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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1월

거룩한 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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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갱년기를 지나며 걱정의 홍수에 빠진 적이 있었다. 혹시 내 몸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치매가 찾아온 건 아닐까? 이러다 강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면 어쩌지? 혹시 골다공증?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하면 어쩌지? 가발을 써야 하는 건 아닐까? 혹시 머리가 완전히 하얗게 새면 어쩌지?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날 밤에는 어김없이 악몽을 꾼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대머리 여자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거나, 온몸 구석구석 암세포가 버섯처럼 쑥쑥 자라나거나, 백발 할머니가 침대 위에 누워 있거나, 머리가 백지상태가 되어 강의를 포기하거나 등.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고, 그때마다 걱정보따리는 점점 커졌다.
그럼에도 ‘혹시나’와 ‘어쩌나’는 끝없이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갔다. 마침내 내 걱정은 아이들, 남편, 사역, 하이패밀리, 대한민국, 전 세계로까지 확장되었다. 걱정 보따리는 더 이상 짊어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나는 그 무게에 짓눌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내 가슴은 가뭄에 메마른 대지처럼 파삭거렸다.
나의 뇌는 부정성의 독기로 썩어 가고 있었다. 영성은 고목나무처럼 말라 비틀어졌고, 몸은 축 늘어진 버드나무가지처럼 생기를 잃었다. 사망 일보 직전이었다. 코리 텐 붐은 이렇게 말했다.
“걱정은 내일의 슬픔을 덜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힘을 앗아가는 것이다.”
갱년기를 지난 지금, 그 어떤 일도 생기지 않았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증명된 건 하나도 없다. 여전히 나는 흰머리보다는 검은 머리가 많다. 아파 끙끙댈 때보다 건강한 날이 더 많다. 강의에 실패할 때보다 성공할 때가 더 많다. 아직까지 집을 잃어 헤맨 일도 없다. 암, 걱정거리도 아니다. 세상은 망하지 않고 잘 돌아가고 있다. 진짜 걱정해야 할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다.
요즘 나의 걱정은 따로 있다. 혹시 말실수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어쩌나, 혹시 공주병 걸리면 어쩌지, 혹시 기도생활 게을러지면 어쩌지, 혹시 생각이 경직되면 어쩌지…? 죽는 날까지 하고 싶은 걱정이다. 나의 ‘거룩한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