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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2월

‘살아남’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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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숨바꼭질을 하면 끝까지 들키지 않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너무 꼭꼭 숨어버려 술래가 찾기를 포기할 즈음에
나타난다. 청소년 시절, 나는 하나님과 숨바꼭질을 했다. 하나님을 믿고 싶었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기도원, 철학서적, 산, 들로 찾아 다녔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하나님은 없었다. 지쳐서 포기했다. 그분은 너무 잘 숨는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선언했다. 그때 삶의 의미를 상실한 나는 허무감에 빠져 자살 직전까지 이르렀다. 바로 그 순간에 나는 하나님을 만났다.

숨바꼭질은 다시 이어졌다. 결혼 7년 만에 가정을 포기하려 했다. 아니,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버린 것이라 확신했다.
아픔을 부둥켜안고 홀로 방안을 뒹굴었다. 고통 끝에 이르러서야 나는 하나님을 찾았다.
“함께 살아도 고통이고, 헤어져도 고통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은 소리가 들렸다.
“네가 변해라.” 나는 나를 변화시키는 고통을 택했다. 이후 남편과 나는 행복의 길에 들어섰다. 

갱년기에 또 한 차례 숨바꼭질을 했다. 호르몬의 대 반란은 일상의 행복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무의미함, 허무함이 휘몰아쳤다. 뻥 뚫린 공허감 속에서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신 듯 했다.
우울감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말라비틀어진 영혼의 고통 끝에서 나는 하나님을 찾았다.
이후 나는 행복으로 춤춘다.

사실 주님은 한 번도 숨으신 적이 없었다. 오히려 술래가 찾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한다.
내가 여기 있으니 “나를 찾으라”며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 나이 50에 접어든 나는 더 이상 숨바꼭질을 하지 않는다.
사역의 무게에 짓눌릴 때, 능력의 한계에 부딪힐 때, 내 모습에 실망할 때, 사역을 포기하고 싶을 때
나는 즉각 하나님을 찾는다.

근동지방의 속담이다. “우리가 1인치 다가가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1엘(45인치) 가까이 오신다.”
내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나를 향해 달려오신다.
지금도 “나를 찾으라”는 주님의 애타는 음성이 들린다. ‘살아남’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