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소리부터 질러요, 신발 좀 어질러졌다고. 걸핏하면 물건을 부수지를 않나, 며칠 전에는 애가 게임한다고 책가방 집어던지고 TV를 박살냈어요. 거기다 차마 못할 말을 내뱉는데…. 아이가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찢어져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저도 애한테 소리를 질러요. 이제 남편 얼굴만 봐도 겁나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의 하소연이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남편은 겉보기에는 멀쩡하다.
그러나 일단 화가 났다 하면 브레이크 고장 난 차처럼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다.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은 혀끝과 손끝과 발끝으로 옮겨 붙는다. 쏟아지는 독한 말은 물론 던지고, 깨고, 부수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한다. 분노가 휩쓸고 간 집안은 토네이도가 할퀴고 간 폐허 같다.
그런데도 남편은 “내 성질 그런 줄 몰라서 건드려?”라며 큰소리친다.
성질 낸 사람은 당연하고, 성질 건드린 사람이 죄인이다. 심지어 “뒤끝이 없다”며 자랑까지 한다. 그 성질에 뒤끝까지 있으면 어떻게 살겠는가? 안타깝게도 뒤끝은 가족들에게 나타난다.
불안, 반항, 우울, 폭력, 비행, 자살, 살인 등의 모습으로 말이다.
여기 노하기는 유능하고, 참기를 더디 하기에 무능한 아버지와 남편이 있다.
남편의 분노는 아내에게, 아내의 분노는 자녀에게, 자녀의 분노는 다시 그 자녀에게 대를 이어 세습된다.
온 가족이 이미 심판을 받고 있다.
반면 분노 폭발에 무능력한 전능자가 계신다. 그는 온 우주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그는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 그분이 노하기를 속히 하셨다면 우리 모두는 벌써 심판대 앞에 섰을 것이다.
그분이 노하기를 더디 하셨기에 우리는 아직도 살아 있다.
분노가 춤출 때 쉼표를 찍어라. 입술로 분노가 몰려올 때 말줄임표를 찍어라.
손끝 발끝으로 분노가 퍼져갈 때 마침표를 찍어라. 심판이 사라진 자리에 은혜의 물결이 몰려온다.
느낌표가 회복된다. 분노의 희생양이 아닌 평화의 승리자임을 자축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