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13년 02월

죄성을 벗었더니 평화가 보인다

과월호 보기


결혼 전, 친정아버지는 미래의 사위에게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얘는 연한 배야. 성격이 얼마나 나긋나긋하고 상냥한지 힘주어 씹을 것도 없어. 살살 녹지.”

남편은 연한 배 맛을 기대하며 와지끈 씹었다. 그러나 그 속에 작고 딱딱한 씨들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소리를 절대 하지 않고, 침묵으로 맞서는 고집의 씨앗들이었다. 보다 못한 남편은 나를 가르쳤다.
“여보, 자, 미안하다 말해 봐. 이건 분명 당신이 잘못한 거야. 그 말하기가 그렇게 힘들어? 자, 따라해 봐. 여보, 미안해요.”
그래도 나는 땅만 쳐다보면서 입을 꼭 다물고 버텼다. 결혼 7년 만에 남편은 나를 ‘힐러리 김’이라 불렀다.
고집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말했다. “여보, 힘들어.”

사춘기 시절, 아버지는 거짓말 한 내게 매를 대셨다. 열 대, 스무 대, 서른 대. 숫자는 계속 올라갔지만, 나는 끝내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고집스러운 자아가 한 가정의 아내라는 역할 속에서도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그것은 죄의 결과였다(창 3:16). 그리고 죄성이었다. 죄의 반복적인 패턴을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당신을 그렇게 보내 놓고 집에 돌아와 통곡을 했지요. 이 육신의 장막이 벗어져야만 나의 고집스러움이 치료될까, 얼마나 더 가혹한 아픔을 겪어야 이 완고함이 변화할까, 어린 시절 상처는 평생의 굴레로 영원히 남아 있어야만 하는가, 정말 치유는 불가능한가, 하나님을 향해 절규했지요….”

이제 남편은 나를 ‘행복 샐러드’라 부른다. 샐러드 볼은 고집스럽게 한 가지만 제작해 내는 용광로와 다르다.
여럿이 섞여도 재료 본연의 맛을 잃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향긋, 상큼, 새콤한 행복을 만들어낼 줄 안다.
이제 남편의 한 마디면 끝난다. “어허!”
고집의 죄성을 벗고 보니 평화가 보인다. 주께서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시기 전에 내가 먼저 돌이켜서다.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