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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9월

선입견을 넘어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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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공부를 한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가관이다. 사방팔방이 기계 천지다. 귀에는 이어폰, 오른쪽에는 스마트폰, 왼쪽에는 먹을거리, 눈앞에는 노트북. 한쪽 귀로는 음악 듣고, 다른 쪽 귀로는 통화를 하면서 손으로는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입에는 연신 먹을 것을 집어넣는다. 보고 있던 나는 슬슬 화가 난다. 기어코 한마디 한다.
“얘, 넌 도대체 지금 뭘 하는 거니? 이게 공부하는 거야? 한 가지만 해, 한 가지!”
아들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엄마, 나는 멀티 플레이어(multi-player)라구요. 엄마처럼 한 번에 한 가지만 못해요. 그리고 나한테 음악은 집중을 도와주는 소음차단기예요. 음악을 안 들으면 그릇 달그락 거리는 소리, 전화 받는 소리, 엄마 말하는 소리 다 들린다 말이에요.”
며칠 뒤 신문에 실린 기사는 내 말이 틀리고, 아들의 말이 정확히 맞음을 입증했다. 독일 수업 규범협회(AHS)에 따르면 아이들이 숙제할 때 클래식이나 록발라드와 같이 리듬이 다소 느린 음악을 들려주면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배경음악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잡음을 막아 주고, 학습 동기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감성에 민감한 우뇌를 자극해 적극성까지 길러준다는 것이다.
선입견은 편견, 혹은 고정관념과 유사한 단어다. 나의 경험에서 나오는 좁은 시각으로 상대방의 행동을 평가하는 것이다. 네가 틀렸으니 내 식대로 고치라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선입견을 내려놓았다. 자칫 아이의 장점을 놓칠 뻔했다. 아이를 거부할 뻔했다.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 씨의 글에 둘째 아들 장수가 등장한다. 그는 동생의 큰 눈을 부러워하며 묻는다.
“엄마, 봄누리는 더 많이 볼 수 있지?”
“아니야. 작은 눈이나 큰 눈이나, 그리고 중간 눈이나 다 똑같이 보여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작은 눈은 더 세밀하게 걸러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저 듬뿍 보지 않고….”
눈이 작은 둘째 아들 장수는 대학 진학 대신 디자인 과정을 선택한다. 재봉틀 앞에 앉아 꼼꼼히 바느질을 해내며 재봉사 자격증을 딴다. 엄마는 말한다.
“장수야, 너는 눈이 작아서 사물을 찬찬히 보니, 바느질도 잘하는구나.”
자식이 스스로에게 갖는 선입견과 편견을 장점으로 바꾸어 준 아름다운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