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래 말을 잘 못한다. 남 앞에 나서는 건 질색이다. 긴장해서 덜덜 떨다 엉뚱한 말을 하곤 며칠을 후회한다. 말실수도 잦다. “공으로 새를 맞혔다” 해야 할 것을 “새로 공을 맞혔다” 하지를 않나, ‘바나바’를 ‘바나나’로, ‘개강했다’를 ‘개장했다’로 말해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사춘기 시절에는 말만 못하는 게 아니었다. 공부도 못하고, 리더십도 없고, 얼굴도 못생겼고, 키도 작고, 성격도 안 좋고, 머리도 나쁘고, 뚱뚱하고…. 날마다 내 약점만 계산했다. 재주가 아니라 재수가 없었다. 부모 잘못 만난 탓이라 여겼다. 모자람과 못났음을 증명하는 말만 듣고 자랐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었다.
청년기에 하나님을 만났다. 무조건적 사랑은 내 시각을 변화시켰다. 부모님의 시각 대신 하나님의 시각에서 나를 바라봤다. 여전히 약점은 그대로다. 그런데 약점이 약점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약점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중년기에 접어들었다. 건망증이 생겼다. 이것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돌아서면 다 잊어버린다. 골목길에 들어갔다 방향을 잃어 이리저리 헤매는 건 예사요, 어제 있었던 일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보 같은 실수를 연발한다. 짝짝이 신발 신고 강의하러 가기, 멸치 몸통은 버리고 내장만 모으기, 머리에 롤 말고 강의하러 가기 등. 사람 이름 외우는 건 포기한 지 오래다. 사람 다루는 치료사가 이름을 기억 못하니 곤란한 지경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여전히 약점투성이인 나를 자책한다. 그러나 나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삶이 흔들리지만 내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지금 나는 말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대중 앞에 서는 것이 일상이다. 더 이상 얼지도, 떨지도 않는다. 재미있다. 감동받고 변화되는 모습에 가슴이 뛴다. 여전히 ‘못하는 것투성이’지만 잘하는 것 한 가지를 볼 줄 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그대로다.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졌다. 약점 때문에 나를 사랑할 수 없다가, 약점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게 되다가, 이제 약점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섬기게 됐다.
모세는 하나님께 말 못함을 핑계로 사역을 거부했다. 하나님은 그를 설득하고(출 4:11), 말 못하는 약점을 보완해 주며(출 4:16), 그 약점을 능가할 만한 무기를 손에 들려준다(출 14:17). 모세의 하나님이 바로 내 하나님이다. 그분 손에 들려지면 약점이 강점으로 변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