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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순례길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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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사무실까지 한 시간 가까이를 걸으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내가 늘 다녔던 길인데,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어느 가게는 내부도 볼 수 있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얼굴도 볼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 속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상상할 수 있었다.
밤늦게 다시 걸어서 집으로 왔다. 오는 길은 같았지만 새로운 풍경과 마주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달랐고, 매장을 청소하며 일과를 마무리하는 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부부, 심각한 분위기로 이야기하는 연인, 집으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지친 모습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그동안 내 인생이 갖고 있던 관성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나도 모르게 속도를 내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쓰러질 거라는 생각에, 이제는 서서히 속도를 늦춰 걸어가려 한다. 빠르게 달려왔던 일상에서 벗어날 예정이다.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꼭 필요하다고 붙들며 싸들고 다녔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떠날 것이다. 걷는 동안 꼭 필요한 것들로 배낭을 꾸릴 것이다. 가장 단순하지만 꼭 필요한 몇 가지만 챙겨 걷고 또 걸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는 앞으로 남은 인생에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한 선택을 할 예정이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 내 인생의 배낭을 정리하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무겁고 힘겨운 인생살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걷고 걷다 보면 내가 가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내가 가야 할 인생길도 보일 것이다. 깊은 침묵은 생각의 잔치로 이끌 것이고,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소유는 참된 감사로 충만하게 채울 것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늘 함께했던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들을 내 인생의 선물들로 차곡차곡 정리할 생각이다.
길을 걸으며 나는 주님과 함께 나를 만날 것이다. 주님과 대화하며 나를 이해하고, 나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내 속에 감춰진 눈물을 다 쏟아낼 것이고, 내 안에 있는 깊은 한숨을 하나님의 은혜로 아침 안개처럼 날려 보내리라. 길가에 펼쳐진 풍경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길을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