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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남자들과 청계천을 걸으며 “저녁에 뭐하세요?”라고 묻자 “저녁에는 일하지요”라고 자연스럽게 대답한다. 저녁은 일하는 시간이란다. 그러나 저녁은 쉬는 시간이어야 한다. 일 속에 파묻혀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는 시간이어야 한다. 쫓기며 살아온 나를 쉬게 하고, 나로 하여금 여유라는 것을 마음껏 누리게 해 줄 시간이어야 한다.
매일 일하는 것이 내 존재감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일에 빠져들수록 내가 더 분명해질 것 같지만, 일에 빠져들수록 나는 사라진다. 일에서 빠져나올 때 나는 더 분명해진다. 저녁에 잘 쉬면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겨난다. 그래서 우리에게 저녁 시간이 필요하다.
중년에게 저녁은 회복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며, 꿈의 칼날을 날카롭게 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의 시간이자, 매일 똑같은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창조의 시간이고, 가족과의 대화를 통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모처럼 일이 없는 저녁조차 자신을 위한 시간들로 사용하지 못한다. 모처럼의 여유 앞에서 방황한다. 정시에 퇴근해도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또다시 술 약속을 잡는 일을 되풀이해 소중한 ‘저녁’을 잃고 만다. 목마르게 원했던 일들이 선물처럼 다가와도 선물 상자를 열 줄 모를 만큼 남자들은 조용한 저녁을 경험해 본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이제 저녁 시간을 찾자. 저녁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시간, 가족 모두가 하루 동안의 일들을 나누며 아프고 힘겨웠던 일상을 격려하고 치유하는 시간, 지친 몸에게 쉼이라는 선물을 줄 수 있는 행복한 시간, 늘 차를 타고 오가는 출퇴근길이지만 한두 정류장 정도를 한가롭게 걸을 수도 있는 시간, 하루 종일 일하느라 마음속에만 담아 뒀던 꿈을 펼쳐 힘찬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평안하고 소망을 가질 수 있는 말씀 묵상의 시간이 돼야 한다.
평화롭고 행복한 저녁은 생기 있는 아침을 품고 있다. 이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저녁 시간을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