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예레미야서 11~22장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유독 예레미야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구절들을 만나게 된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이라는 말씀이 그렇다.
유다 왕들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들고 간 예레미야
예레미야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던 시대의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 본문은 당시 시대의 두 가지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첫째는 분열 왕국 남유다의 멸망 시기에 통치한 마지막 왕들의 심판이 기술되고 있는 점이다. 이미 예레미야 1장 2~3절에서 유다의 요시야왕으로부터 마지막 시드기야왕까지 언급되긴 했지만, 예레미야 22장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살룸)와 여호야김, 그리고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고니야)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각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선포하는 장면을 기록한다.
예레미야가 전한 메시지는 한마디로 끔찍했다. 여호아하스에 대해서는 “그가 거기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렘 22:12), 여호야김에 대해서는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져지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렘 22:19), 여호야긴에 대해서는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으리라”(렘 22:26)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왕들에게 이처럼 끔찍한 심판을 선포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예레미야는 바로 죽음의 위협을 각오하고 심판의 메시지를 유다 왕들에게 들고 걸어간 인물이다.
치욕과 모욕 등 거부당한 선지자
예레미야가 직면해야 했던 또 한 가지 시대적 특징은 ‘거부’다. 예레미야는 고향 아나돗 사람들로부터 살해 위협이라는 심각한 거부의 상황을 직면해야 했다. 본문은 예레미야에 대한 ‘거부’를 연이어 기록한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거부당했고, “다 나를 저주한다”라고 말하게 되는 유다의 박해와 고통을 경험했으며, 죽음의 위협에 처하기도 했다. 마침내 예레미야는 출생을 원망하는 자리에까지 이른다.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렘 20:14~18).
예레미야는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렘 20:8)가 되며 자신의 출생까지 저주하게 되는 ‘비통한 거부’의 현장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군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말씀이 뼛속까지 불타올랐던 선포자
예레미야가 이처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총체적 난국에서도 타락한 권력과 타락한 백성에 대항하며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본문은 그의 마음을 이렇게 보여 준다.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새번역은 다음과 같이 옮겼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 그가 사무치는 선포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심장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처럼 깊이 파고들었던 이유는 본문의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 15:16)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레미야는 무엇보다 말씀의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먹어야 하는 음식처럼 가까이했다. 이는 예레미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인 모세, 다윗, 에스겔, 그리고 사도 요한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무엇보다 말씀의 선지자였음을 기억하며, 이번 달 예레미야 묵상을 통해 말씀을 먹는 은혜와 그 말씀으로 인해 우리의 심장과 뼛속까지 불타오르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기도한다. 또한 매일 말씀 앞에 항복하는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