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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그리스도의 노예 바울, 제국의 심장 로마에 복음을 말하다

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


로마서 헬라어 성경의 첫 번째 단어는 ‘바울’이고, 두 번째 글자는 ‘노예’(둘로스)이며, 세 번째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다. 바울은 당시 세계의 중심인 로마 제국의 심장이자 수도인 로마에 보내는 편지를 이렇게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롬 1:1). 적어도 로마 제국 안에서 인간으로서는 가장 비천한 존재로 여겨지는 신분이지만, 사실상 주인의 소유물로 여겨지는 존재를 지칭하는 ‘노예’라는 단어를 바울은 빨리 쓰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왜 그랬을까? 바울은 어떤 인물이기에 수치의 단어인 노예를 제국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로마에 보내는 편지에 쓰고 싶었을까?

 

바울, 그리스도의 노예
바울이 살던 당시 노예는 주인의 재산이요, 소유물이었기에 돈으로 팔고 살 수 있는 거래의 대상이었다. 노예는 주인의 뜻에 따라 자신의 자리가 결정됐다. 하는 일도 달라지고, 사는 곳도, 먹는 것도, 심지어 주인도 바뀌었다. 노예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주인이고 그게 노예의 본질이었다. 그래서 노예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예라는 단어는 수치를 의미했고 절망과 불가능을 뜻할 뿐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단어를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데 끌어들인다. 주저함도 부끄러움도 지체함도 없이 말이다. 바울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종, 곧 노예라고 칭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어떤 인물인지는 그의 호칭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인 인물이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자신의 사명이요 존재 이유가 되는 사람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 자신의 삶의 방식인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그리스도의 ‘노예’이었고, 노예에게는 주인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있다면, 우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노예가 돼야 하는 자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참으로 커다란 영적 도전이다.

 

바울, 노예인 것을 자랑하다
바울은 자신을 ‘노예’로 지칭하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랑하고 나선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롬 1:16). 바울이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 ‘복음’은 자신을 노예로 삼고 있는 주인 곧 ‘예수’시다.
이 예수는 구약 안에서 약속됐고, 이제 때가 돼 우리 가운데 오셨으며,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나셨다. 예수가 중심인 이 이야기,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이 놀라운 사건에 관한 소식이 ‘복음’이다. 곧 예수가 복음이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요, 복음을 자랑하는 것은 ‘예수’를 자랑하는 것이다. 바울은 수치의 이름 노예를 자랑의 이름으로 바꿔 놓았다.
그리스도의 노예는 이제 자랑스러운 신분이다. 그리스도가 복음이기 때문이다. 이런 깨달음은 그가 쓴 다른 편지들에서도 확인된다(참조 롬 15:17; 고전 1:31; 갈 6:14; 빌 3:3).
로마서 편지를 받는 로마인들에게 ‘노예’는 저주요, 희망의 상실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신이 ‘노예’인 것을 자랑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노예로 자칭하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은 것은 그가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가 복음이기 때문에 그분의 노예된 것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이었다.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예수가 복음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거침없이 말한다. 그리스도의 노예로서 그는 주인이신 그분의 뜻을 받들어 인간의 실상을 숨김없이 말한다.
이번 호부터 시작되는 로마서 묵상을 통해 바울이 전하고 있는 더 이상 숨을 수 없는 인간의 실체, 예컨대 창조주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인이라는 진정한 절망을 직면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의라는 참된 희망을 만나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이 위대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 받은 바울을 본받기를 기대한다(고전 4:16, 빌 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