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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모세, 자기 부인에서 소명을 발견하다

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

족장 중심의 역사를 지나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출애굽으로부터 시작한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뿐 아니라
성경 전체가 말하는 구원 이야기의 중심 모티프다.
하나님의 구원사 설명에 있어 출애굽 역사는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그리고 이 출애굽기 중앙에는 모세라는 인물이 자리하고 있다.


광야의 나그네 모세
모세는 애굽에 내려진 “아들이면 죽이라”는 왕의 포고령을 뚫고 태어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의 믿음 덕분이었다. 참 믿음은 신으로 추앙되던 애굽 왕의 명령조차 초라하게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다(1:17).
애굽 왕궁에서 자란 모세는 장성한 이후 고되게 노동하는 동족을 돌아본다(2:11). 하지만 모세의 행동은 살인으로 이어지고, 하루아침에 그는 메마름의 땅 광야의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모세가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애굽의 모든 보화를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받는’ 믿음의 길을 선택하는 것에 이 광야 체험이 가로놓여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히 11:24~26). 그래서 모세는 자신의 첫 아들의 이름을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라’는 뜻을 담아 게르솜이라 지었다.
쇳덩이가 풀무를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대장장이의 손에 사용 가능한 도구로 바뀌고 쇠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것처럼, 모세에게 광야의 나그네 길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풀무였다. 그러면 모세에게서 발견되는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회개의 사람 모세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 그의 이름을 불러 주신 곳은 광야였다. 양 떼를 치고 있을 때, 그것도 장인 소유의 양 떼를 치고 있을 때였다. 
그때 그곳에서 모세가 들은 하나님의 음성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데려가려 하노라”(3:7~8).
물론 모세가 이렇게까지 큰 비전을 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동족의 아픔을 돌아보고 해결하려고 했던 것은 원래 모세 자신의 꿈이었다(2:11~12). 그런데 이 긴 세월이 지난 지금, 광야에서 나그네인 그가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의 비전을 들은 것이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겠다”는 말씀을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과 구원은 모세 자신의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이라는 것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모세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직면했으리라. 모세는 어쩌면 그 옛날 동족을 위한 꿈을 꾸고, 하나님을 위한 자신의 열심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며 애굽 사람을 쳐 죽였을 때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하나님, 오히려 그 일로 왕궁을 떠나 나그네가 되는 상황에서도 내버려 두신 하나님에 대해 큰 상처를 마음 깊이 묻어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세는 자신이 꿈꿨던 동족을 위하는 마음과는 도무지 비교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큰 비전과 만난다. 긴긴 세월 마음 깊숙이 묻어두고 차마 꺼내지 못했던 그 신앙의 상처가 녹아내리는 것은 물론, 하나님께서 나서신다는 말씀 앞에 자신의 무지와 오만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모세는 동족의 구원이 하나님의 비전인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소명은 자기 부인에서부터
비로소 우리는 떨기나무 불꽃을 보여 주시기까지 하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고 또 거절하는 모세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모세를 달래고 또 달래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마음도 이해할 것 같다. 예닐곱 번 아슬아슬 반복된 하나님과 모세의 말씨름에는 이유가 있었다. 모세의 거절은 자기 발견이요, 회개였던 것이다.
마침내 모세는 ‘내가 누구인지’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모세는 이제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준비가 된 것이다. 출애굽기 묵상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해 한 번뿐인 우리 인생을 소명자로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