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남유다 여덟 번째 왕 요아스. 그는 열왕기하 11~12장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스라엘 왕들의 신앙과 삶을 보여 주는 구약의 역사서는 종종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하나님의 백성, 여호와의 선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일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 살아남은 요아스
요아스의 삶도 ‘어찌 이럴 수 있을까’ 할 만큼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요아스의 아버지는 남유다의 여섯 번째 왕 아하시야고, 그의 할아버지는 다섯 번째 왕 여호람, 할머니는 일곱 번째 왕 아달랴다. 그리고 아달랴는 북이스라엘을 우상 숭배로 몰아넣은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다. 즉 요아스는 이세벨의 증손자다.
요아스의 아버지 아하시야는 왕이 된 지 1년 만에 예후에 의해 살해된다(왕하 9:27). 그러자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자신의 자손들을 몰살시킨다(왕하 11:1). 요아스는 이 아달랴가 휘두른 처참하고 비극적인 살육의 현장에서 살아남는 것으로 등장한다.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게 한지라”(왕하 11:2).
성전을 수리했으나 우상 숭배자로 돌변
요아스는 고모 여호세바와 고모부이자 제사장 여호야다의 보호 속에 6년간 양육을 받고 마침내 남유다의 여덟 번째 왕이 된다(왕하 11:4~21). 이와 같은 역사와 배경에 걸맞게 요아스는 선한 왕의 모습을 보인다(왕하 12:2).
특히 요아스는 우상 숭배와 신앙의 퇴조 현상으로 퇴락해 있던 성전을 수리한 왕이었다. “…성전의 어느 곳이든지 파손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왕하 12:5).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뒤 120년 이상 세월이 흘렀으니 성전 수리는 더욱 위대한 일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는 제사도 회복시켰다(왕하 12:16; 대하 24:14 등)
그러나 요아스는 살육과 우상 숭배의 역사를 뒤로하고 위대한 영적 회복의 새 역사를 쓴 이후 다른 사람처럼 산다.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대하 24:17~18).
요아스는 우상 숭배자로 돌변한다. 심지어 자신을 왕위에 앉게 한 제사장이자 고모부인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돌로 쳐 죽이게 한다. 그것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선지자의 애끓는 회개의 메시지 앞에서 말이다.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요아스)의 명령을 따라 그(스가랴)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더라”(대하 24:20~21). 요아스의 배은망덕은 충격적이다.
교훈을 주던 여호야다가 떠난 후 무너지다
요아스는 왜 ‘다른 사람’이 됐을까? 우선 우리는 지난 세월 아무리 놀라운 영적 성공이나 위대한 신앙 체험을 했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신앙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언제나 진정으로 겸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동시에 성경이 명백히 밝혀 주고 있는 요아스 실패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왕하 12:2, 참조 대하 24:2, 14 등). 제사장이 옆에서 조언을 하는 동안 요아스는 겸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사장이 떠난 다음 그는 무너졌다. 그의 신앙에는 진정성이 없었던 것이다. 제사장이 죽은 후에 방백들이 와서 그에게 절하며 말을 하자, 하나님을 버리고 만다(대하 24:17~18).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요아스는 무엇보다 우리 각자가 직접 성경을 펼쳐 읽어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함을 보여 준다. 좋은 간증이나 신앙서적은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참고일 뿐이다. 내가 직접 성경 말씀을 읽어야 하고, 그 말씀 위에 내 고백이 담긴 신앙을 세워야 한다. 즉 주체적 신앙이 돼야 한다.
매일 성경 본문을 묵상하는 큐티는 말씀 위에 신앙을 세우는 더없이 좋은 전략이다. 이번 한 달도 말씀 묵상과 함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