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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예수님을 주목하게 하는 제사장 멜기세덱

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히브리서에서 만나는 주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멜기세덱. 그는 히브리서 5장부터 7장까지 등장한다. 구약성경 전체 중 네 구절(창 14:18~20; 시 110:4)에서만 언급됐던 인물이 히브리서에서 갑작스레 길게 다뤄진다. 그리고 그는 이 편지의 전체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신비로우나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
멜기세덱에 대해 눈에 띄는 대목 하나는 그가 히브리서 기록 당시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매우 오래전 아브라함과 조우하면서 등장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창 14:18).
이후 그는 신구약성경을 통틀어 히브리서 전까지 딱 한 번 언급된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4).
사실 멜기세덱에 대한 연구는 쉽지 않다. 일단, 멜기세덱이 처음 등장하는 창세기 14장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가늠할 수 있는 말이나 문맥적 정황을 거의 기록하지 않았다. 그가 당시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축복했다는 것(창 14:19)과 아브라함이 그에게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창 14:20) 외에 다른 정보는 없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히브리서의 묘사다. 특히 다음 구절은 성경의 대표적인 난해 본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 7:3). 그래서 어떤 연구가들은 멜기세덱을 가상의 인물로 보거나 하나님의 아들 또는 천사나 성령의 현현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분명 역사적 인물이다. 창세기 본문은, 아브라함이 역사적 인물이었던 것처럼 멜기세덱도 그렇다고 천명한다. 무엇보다 히브리서 자체가 멜기세덱의 역사성을 전제한다. 왜냐하면 그를 모세(히 3:2, 16), 여호수아(히 4:8), 아브라함(히 6:13, 7:1~2), 아론(히 7:11) 등의 걸출한 인물들과 함께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말할 때, 다른 어느 성경보다 분명하고 탁월하게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완성하신 메시아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 놀라운 설명을 위해 멜기세덱을 등장시킨다.


예수의 예수 되심을 드러내는 역할 감당
그러면 히브리서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멜기세덱은 어떤 인물인가? 사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신 분임을 확증하려는 히브리서의 의도나 멜기세덱이 등장하는 5장부터 7장까지의 문맥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명쾌하게 말해 준다.
그는 철저히 예수님께서 어떻게 예수님 되시는지를 주목하게 한다. 그것도 대제사장직을 바로 예수님께서 담당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신 메시아이심을 가리키고 설명하는 역할로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곧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을 레위 지파의 대제사장직으로 설명하는 데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히 5:1~2). 또 한 구절을 보자.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히 7:11). 레위 지파의 대제사장 제도로는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멜기세덱은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구원, 특히 대제사장직을 통한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 쓰임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이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의의 왕이요… 곧 평강의 왕이요…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 7:1~3).
그러므로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히 7:3)라는 묘사는 멜기세덱이 레위 지파 출신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유다 지파에서 난 예수님의 대제사장직, 그러면서도 진정한 대제사장임을 설명하는 최고의 길인 셈이다.
멜기세덱은 예수님을 주목하게 하는 인물로 히브리서에서 그려진다. 히브리서 묵상을 통해 유일하면서도 참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 그 주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