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느헤미야는 구약성경 가운데 가장 위대한 ‘회복’에 대해 말씀하는 본문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라 할 수 있는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 끝에 이뤄진 귀환을 배경으로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이다.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다. 남유다 또한 주전 586년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한다. 예루살렘은 무너지고 성전은 불타 버렸다. 살아남은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왕하 25:21, 참조 대하 36:17~20). 사울을 왕으로 세우면서 시작된 이스라엘 왕정 역사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순간이다. 한마디로 절망이다.
바벨론에서 태어난 왕의 후손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물론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지만(렘 29:10),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과 수치, 슬픔과 절망의 포로 생활을 끝내고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대하 36:21~23; 스 1:1~3).
그리고 이 놀라운 귀환, 곧 회복의 역사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 벌어졌다. 즉 이스라엘의 중심인 성전 재건이 시작됐다. 포로 귀환이라는 민족적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더라도, 불타고 무너진 성전이 재건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면 그것은 도저히 이스라엘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율법에 의하면,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앞에 서게 하는 죄를 해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따라서 성전은 죄인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 중심이 된다.
그렇게도 중요한 성전, 그러나 산산이 무너져 내린 성전이었기 때문에 이를 재건하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그 성전 재건의 핵심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스룹바벨이다(스 3:2, 5:2; 학 1:12~15 등).
그렇다면 스룹바벨은 어떻게 바벨론 포로 귀환 시대에 황폐해진 이스라엘의 회복을 섬기는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 특히 그는 어떻게 이스라엘 회복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전, 즉 무너진 성전 재건을 주도할 수 있었을까?
스룹바벨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남유다 시드기야 왕의 손자, 즉 왕의 후손이다(대상 3:17~19, 대하 36:10, 참조 마 1:13). 그의 이름은 ‘바벨론의 씨’ 또는 ‘바벨론 출생’을 뜻한다. 스룹바벨은 바벨론에서 태어난 것이다. 때문에 그가 어떤 인물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이스라엘 성전 재건에 앞장서다
스룹바벨은 파괴되기 이전의 예루살렘 성전을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 재건에 앞장선다. 왕의 후손인 그는 분명 그 누구도 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동족의 슬픔과 아픔의 역사, 포로 신분으로 지내야 했던 바벨론에서의 생활, 그리고 황폐해진 고국의 현실을 수없이 마주했을 것이다.
그 혼돈과 절망의 한가운데서 스룹바벨은 성전 재건이라는 과업을 섬긴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반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룹바벨은 상황이야 어떻든 ‘율법에 정한 대로’(느 12:44) 회복돼야 한다는 것, 곧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 앞에 자신을 복종시킨 것이다. 그리고 율법대로라면 제단이 세워지고 성전이 재건돼야 했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스 3:2, 참조 스 5:2).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한 스룹바벨
스룹바벨이 성전을 재건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선지자들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들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스 5:2). 스룹바벨은 구체적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슥 4:6, 참조 학 1:1, 2:20~21).
스룹바벨은 율법을 삶의 중심에 둘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경청해야 한다는 사실, 그것도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경청해야 함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인물이다. 이번 한 달도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되고,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말씀을 지속적으로 듣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