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원희 원장(한국성지미디어/ www.photobible.kr)
바울이 감옥에서 편지를 보낸 골로새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골 1:2)
라오디게아에서 17.6km, 히에라볼리에서는 20.8km 떨어져 있는 골로새는 아시아 쪽 터키 지방으로 리쿠스 계곡의 성읍이다. 당시 이곳 주민들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브루기아인들이었으며, 그들은 여신을 숭배했다. 그리고 주전 401년에 크세노폰은 바사 왕 고레스의 진군을 설명하면서 “골로새는 번창한 큰 도시”라고 기록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헬라 시대 이전의 골로새는 이 지방에서 가장 번창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헬라 시대에는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와 함께 경쟁했으며, 로마 시대에는 직물공업의 중심지였다.
골로새에 복음이 전해진 때는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러 있을 당시로 여겨지며(행 19:1~10), 골로새 사람인 에바브라를 통해서인 듯하다(골 1:7, 4:12~13).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골로새서를 써 이곳으로 보냈다(골 1:4, 2:1). 그 후 이곳을 방문하고자 하는 그의 소원(몬 1:22)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이뤄졌다.
그의 종인 오네시모(골 4:9)는 초기 골로새교회 교인이었다. 골로새교회에는 유대인과 헬라인, 브루기아인이 섞여 있었는데, 이는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반박한 사변적인 이단을 초래한 가장 주요한 원인이 됐다.
골로새는 8세기에 황폐해져 채석장으로 변했으며,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행해지지 않아 지금까지 고고학 연구와 역사 연구 결과만으로는 이 도시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보통 성지순례 시에는 들르지 않는 곳이지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1시간 정도 여유만 있다면 언덕으로 된 골로새를 방문해 바울 사도가 이곳 성도들에게 보낸 말씀을 상고해 보는 것도 의미가 클 것 같다.
거룩한 성, 히에라볼리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골 4:13)
히에라볼리는 라오디게아 북동쪽 9km, 골로새 북서쪽 18km, 빌라델비아 북쪽 약 160km 지점에 소재한 오늘날의 파묵칼레(Pamukkale)다. 파묵칼레는 ‘목화성’이란 뜻이고, 히에라볼리는 주전 2세기 버가모 왕에 의해 붙여진 이름으로 ‘거룩한 성’이란 뜻이다.
히에라볼리는 주전 2세기경에 버가모 왕 엠마네스 2세(Ewmenes Ⅱ)가 건설한 도시며, 골로새서 4장 2~13절에 의하면 이곳의 교회는 에바브라 디도가 설립한 듯하다. 로마인은 이곳에 대형 로마식 공중목욕탕을 지었는데, 오늘날 이곳에서 발굴된 유적들은 대부분 로마 제국 시대의 것이다. 그중에서 석조로 된 목욕탕은 대부분 원형대로 복구됐다.
이곳의 발굴 작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된 것은 1957년부터다. 산 중턱에는 야외극장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 위에는 빌립 집사의 순교 무덤(혹은 사도 빌립의 무덤으로도 주장되는 무덤)이 있다. 빌립은 이곳에서 그의 말년을 보냈으며, 유세비우스는 빌립이 처녀 예언자인 그의 딸과 함께 이곳에 묻혔다고 기록했다(참조 행 21:8~9).
이 지역은 석회질이 있는 온천이 오랜 세월 동안 침전돼 하얀 절벽을 이뤘다. 높이가 약 100m에 이르는 백색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이곳의 장관은 멀리서 보면 마치 만발한 목화송이로 뒤덮인 것같이 보이는데, 새벽부터 저녁까지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색깔이 변하는 아름다운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특히 이곳 히에라볼리는 갑바도기아, 에베소와 더불어 터키의 3대 자연관광 명소로 손꼽힌다. 하지만 사도 빌립의 마지막 삶이 담겨 있는 뜻깊은 곳이기에 나는 순례자들과 함께 산 중턱에 있는 빌립 무덤과 기념교회 터를 찾아가 그의 순교를 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