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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2월

남유다의 왕래를 막기 위해 북이스라엘의 바아사가 건축한 ‘라마’

과월호 보기 이원희 목사(한국성지미디어 원장)

남유다의 왕래를 막기 위해 북이스라엘의 바아사가 건축한 ‘라마’

아사 왕이 온 유다 무리를 거느리고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운반하여다가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대하 16:6)


르호보암 때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초기에는 남북 간에 국경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남유다의 아사 왕 즉위 36년, 북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은 남유다를 치러 올라와 라마를 건축함으로써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유다의 아사 왕과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이에 아사 왕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곳간에 있는 은금을 다메섹에 있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뇌물로 주어 그로 하여금 북이스라엘에 속한 이욘과 단, 그리고 아벨마임과 납달리 지역에 있는 국고성들을 공격하도록 했다. 이처럼 북이스라엘은 동족인 남유다를 치고, 남유다는 동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방나라인 아람 왕에게 북이스라엘을 치도록 한 것을 통해 이스라엘 남북 역사의 서글픈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라마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사이의 변경 가까운 곳에 있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성읍으로(수 18:25), 오늘날의 에람(E-Ram)이다. 북이스라엘의 바아사는 남유다를 봉쇄하기 위해 이 성읍을 요새화하려고 했으나, 남유다의 아사는 라마를 분쇄하고 그곳에 있던 석재들을 근처에 있는 게바와 미스바를 요새화하는 데 사용했다(왕상 15:17).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던 예레미야는 이곳에서 풀려났으며(렘 40:1), 베냐민 지파의 귀환으로 다시 거주하게 되었다(스 2:26).
오늘날 라마는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에서 팔레스틴 마을로 들어가는 체크 포인트가 있는 지역이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의 경계선에 있는 이 라마에서 성경시대의 이스라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해 본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분열된 근본적인 원인은 모두 하나님을 떠나 이방 신상을 섬기고 악행을 저지른 데 있었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의 국방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이다.



아람의 벤하닷이 침공한 북이스라엘의 성읍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마임과 납달리의 모든 국고성을 쳤더니(대하 16:4)


남유다 아사 왕의 뇌물을 받은 다메섹의 아람 왕 벤하닷이 게바와 미스바와 이욘과 단을 공격하자, 북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은 라마를 건축하던 일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외세의 도움을 빌려 문제를 해결한 남유다의 정책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도움을 얻기 위해 성전의 곳간에 있는 은금을 뇌물로 사용하면서 외세를 끌어들인 것은 더욱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문제 해결방법이었다.
이욘(Ijon)은 요단 계곡의 아벨 벧마아가 북쪽 14.4㎞ 지점으로, 오늘날 레바논 메리 아윤(Merj ayun) 근처의 텔 디빈(Tell Dibbin)과 동일시된다. 훌레 골짜기에 있는 이곳은 납달리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으로, 다메섹의 벤하닷(왕상 15:20)과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3세가 이 성읍을 취했다(왕하 15:29).
단은 티베리아 북쪽 65㎞ 지점으로, 두로에서 다메섹까지 동서의 간선도로와 남북도로가 교차되는 지점에 있는 이스라엘의 북쪽 국경도시였다. 지명의 뜻은 재판장이다. 원래의 이름은 라이스였으나(삿 18:29), 단 족속이 점령한 후 그 조상의 이름을 따라 단이라 개명하였다.
훗날 여로보암은 이곳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숭배하게 함으로써 남유다의 르호보암에게 향하는 백성들의 인심을 돌리고자 했다. 여로보암의 이 조치는 결국 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왕상 12:25~30).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북쪽 지역 국경을 단이라 하였다(삼상 3:20). 현재도 이곳은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국경지대에 있다.
이욘과 단에서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힘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남유다의 아사 왕을 생각한다. 그리고 오직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하나님께만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