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난 베드로수위권교회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고전 15:4~6a)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처음 나타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 특히 베드로(게바)에게는 여러 차례 나타나셨는데, 그중에서 베드로가 실의에 빠져 갈릴리 바다에서 힘없이 고기를 잡고 있을 때 그곳에 나타나신 일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한 바위에서 생선과 떡을 굽고 계셨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 후 “네 양을 먹이라”고 다시 사명을 주셨다(요 21:1~18).
오늘날 이곳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상을 차린 곳으로 알려진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위에 베드로수위권교회(Church of the Primacy of St. Peter)가 세워져 있다. 이 교회는 1938년 프란시스코수도회에서 베드로가 미래 교회의 수장으로 선택된 것을 기념하여 바위 위에 세운 교회이다.
교회 내부는 검정색 현무암으로 인해 베드로수위권교회의 단순성이 더욱 강조되어 보인다. 교회 밖에는 예수님과 베드로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를 바라보시고, 베드로는 한 손을 예수님께 내밀며 예수님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바닷가로 내려가는 계단 바로 밑에는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의 돌로 된 징검다리가 있다.
성지순례객들은 이곳을 방문하면 예수님의 식탁이라 부르는 바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며, 밖에 세워진 동상 앞에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는 복음성가를 부른다. 나는 갈릴리의 어느 장소보다 이곳이 가장 은혜롭다. 그래서 성지순례를 인도할 때면 이곳에서 순례객들에게 절망 중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베드로와 제자들을 위해 친히 식탁을 준비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한다. 제자들이 절망에 빠져 그물을 던지고 있을 때 친히 식탁을 준비하신 예수님이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심을 말이다. 그런 예수님의 사랑 앞에 세상이 가져다주는 절망은 우리를 결코 넘어뜨리지 못한다.
위험하지만 빠른 길을 선택한 에스라의 귀환로
“그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스 8:21)
기원전 587년 유다가 멸망한 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지 70년 만에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그의 즉위년에 포로로 잡혀온 자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해방령을 내렸다. 이는 예레미야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유다인들은 세 차례에 걸쳐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었다.
1차 귀환(스 1:1~6:22)은 고레스 원년(BC 538)에 해방령이 내려지고, 그 일 년 뒤인 기원전 537년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의 주도로 이루어진다. 이때 유다인 42,360명을 비롯하여 5만 여명이 귀환했다. 귀환로는 당시 통상로인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북서쪽으로 올라가 알렙포, 하맛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왔을 가능성이 크며 4개월 정도 소요되었다. 이때 유다에 도착한 유다인들은 학개와 스가랴의 외침과 더불어 성전 재건에 힘썼다.
2차 귀환(스 7:1~8:36)은 바사 왕 아닥사스다 1세 때 이루어진다. 기원전 457년경에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의 인도로 모압 자손과 요압 자손 등 1,400명이 귀환한 것이다. 이들은 아하와로 흐르는 강에 모여 그곳에서 3일간 장막에 있다가 강가에서 평탄한 귀국을 위해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한 후 그해 12일 귀국길에 올랐다.
이때 에스라 8장 22, 23, 31절에 의하면 1차 귀환 때처럼 통상경로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위험하지만 빠른 길을 경로로 삼은 것으로 추측된다. 에스라가 위험을 무릅쓰고 빠른 길을 택한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을 사모했음을 보여준다.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도 늘 예루살렘을 향해 문을 열어놓고 기도했다. 나는 에스라가 선택했던 시리아의 사막길을 달리면서 다시 한 번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가슴속에 타오르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