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원희 목사(한국성지미디어 원장)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은 밧모 섬의 계시동굴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 1:9)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은 밧모 섬은 에게 해에 산재해 있는 3,000여 섬 가운데 하나이다. 터키의 서해안 쿠사다시(Kusadasi, 에베소의 외항 격)에서 동쪽으로 약 60km 지점이고,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서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지리적인 위치로는 터키에 훨씬 가까우나 에게 해의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그리스에 속해 있다.
나는 밧모 섬을 십여 차례 방문했다. 밧모 섬으로 가는 방법은 터키 쿠사다시 항구에서 전세선을 타고 가거나, 크루즈급 정기 여객선을 타고 가는 것이다. 전세선은 일정을 쉽게 맞추기 위해 이용할 수 있지만 여름철을 제외하고는 풍랑으로 인해 취소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정기선은 단체 터키 순례 시에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다.
밧모 섬의 크기는 남북이 약 16km, 동서로는 가장 넓은 곳이 약 10km이고, 중간 부분은 잘록하여 불과 1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해안 굴곡이 심하고, 그 둘레는 약 60km로 면적은 우리나라 영종도의 크기와 거의 같은 34㎢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승용차보다는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로마제국 시대에 밧모 섬은 정치·종교 중범자들의 유배처였는데, 한 번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힘든 생지옥이었다.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은 도미시안(Domitian) 황제 때 이 섬으로 유배 와서(95년경, 계 1:9), 18개월간 유배 생활을 하다가 96년에 에베소로 귀향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먼저 요한이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에 계시를 받았다는 산 중턱의 요한계시동굴에 들렀다. 동굴 입구에는 요한계시록 1장 9절 말씀이 그리스어로 동판에 새겨져 있었다. 계시동굴 입구 위에는 눈이 어두운 요한을 대신해 계시의 내용을 대서하는 브로고로 집사의 모습이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요한이 계시를 받을 때 갈라졌다고 하는 바위가 있었다. 그리고 바위 벽면에는 사도 요한이 기도한 후 일어날 때마다 손으로 잡았다는 곳에 홈이 파여 있었다.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으면 바위에 홈이 파질 정도일까?
바로 이곳에서 사도 요한은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환상을 보았던 것이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사도 요한을 생각하며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의 말씀으로 기도를 마쳤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은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가장 큰 희망이요 위로이다. 동굴 내부는 거룩한 곳이라 하여 사진 촬영을 철저히 금하고 있어, 나는 입구에서 안쪽을 향해 사진을 촬영했다. 계시동굴에서 나오자 밧모 섬의 스카라 항구가 한 눈에 들어왔다.
칭찬만 받은 빌라델비아교회
“빌라델비아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계 3:7)
빌라델비아는 오늘날 터키의 알라세힐이다. 이곳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교회의 유적지였다. 터키 지역의 모든 교회 터들이 그렇듯, 이곳 역시 두 개의 벽돌로 쌓은 웅장한 기둥만이 남아 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형제 사랑’이란 뜻을 가진 도시 이름답게 예수님께로부터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키고 그분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고 칭찬을 받았다(계 3:8).
일곱 교회 중에서는 칭찬과 책망을 받은 교회가 있는가 하면 책망만 받은 교회도 있는데, 빌라델비아교회는 서머나교회와 함께 칭찬만 받은 교회였다. 나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던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얼마나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말씀과 생활이 동떨어진 이중적인 생활로 인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가?
말씀과 다른 생활에는 영적 영향력이 없다. 세상을 향한 기독교의 힘은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데서 나온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처럼 비록 적은 힘이지만 서로 섬기고, 적은 것이지만 베풀고, 욕심을 버리는 삶 속에서 말씀의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