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원희 목사(한국성지미디어 원장)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엘라 골짜기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전열을 벌였으니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삼상 17:2~3)
“그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중이더라”(삼상 17:19)
엘라 골짜기(Va. Elah)는 ‘상수리나무 골짜기’라는 뜻으로 베들레헴 서남쪽 24km 지점에 있다. 현재는 아랍어로 와디 에스 산트(Wadi es Sant)라 불리는데, 이는 ‘아카시아 골짜기’란 뜻이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은 단순하다. 예전에는 상수리나무가 많았고, 현재는 아카시아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상수리나무는 고대 사람이 신성하게 여기던 나무인데, 바로 그런 장소에서 다윗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는 골리앗 앞에 당당히 나아가 영광과 존귀를 받아야 할 분이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삼상 17:45). 이처럼 하나님의 존귀하신 이름과 능력을 분명히 드러낸 곳이 바로 이곳 엘라 골짜기다.
이 골짜기는 주위의 다른 세 골짜기가 합쳐져서 만들어졌으며, 골짜기의 너비는 400m 가량으로 꽤 넓다. 우기에는 물이 제법 흐르지만 건기에는 물이 전혀 흐르지 않는다. 이곳에는 작고 둥근 돌들이 많다. 그 옛날 다윗이 이 매끄러운 돌들 가운데 물맷돌 다섯 개를 주워 그중 하나로 블레셋 가드 사람 골리앗을 쳐서 죽이는 승리를 거둔 것이다(삼상 17:1~54).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대조적으로 다윗이 골리앗에게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육신의 눈으로 골리앗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과 함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분명히 의지하고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담대히 나아갔던 작은 소년 다윗의 커다란 용기를 되새길 수 있었다.
사울을 피해 숨었던 아둘람 굴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삼상 22:1)
아둘람의 뜻은 ‘격리된 장소’, ‘피난처’, ‘은신처’ 등이다. 아둘람의 고대 명칭은 키르벳 이드 엘 마(Kh. Id el-Ma[Miyeh])로서 지금도 이 지명으로 불리고 있다. 아둘람은 예루살렘 남서쪽, 헤브론 북서쪽 16km 지점인 텔 에스 세이커 마드쿠르(T. esh Sbeikh Madhkur)라고 전해지며, 오늘날 현대 이스라엘 지도에는 성서의 기록대로 아둘람 굴(Adulam Caves)로 표기되어 있다.
아둘람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견고한 성읍이었던 곳으로서 야곱 시대에는 가나안인이 살았으며(창 38:1~2), 야곱의 아들 중 유다가 아둘람 여인과 결혼한 후 이곳에서 활동했다. 후에 여호수아에 의해 점령된 뒤에는(수 12:15) 주위에 있는 야르뭇과 소고와 아세가 등과 함께 유다 지파의 분깃이 되었다(수 15:35).
다윗이 도피 생활을 할 당시에 이곳은 유다 땅의 영향력 밖에 있었고, 다윗은 종종 이 굴에 몸을 숨겼다(삼상 22:1, 삼하 23:13). 다윗이 아둘람에 있을 때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가량 되었다(삼상 22:2). 다윗은 그들의 용병대장이 되었고, 그들은 후에 직업 군인으로서 다윗의 핵심세력이 되었다.
BC 918년 애굽의 파라오 시삭이 유다를 침공하기 전에, 르호보암이 남쪽과 서쪽으로부터 오는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이 성읍을 더욱 견고히 해 방어선을 구축하기도 했다(대하 11:7). BC 701년에는 산헤립이 점령한 46개의 성채 가운데 하나였으며(왕하 18:13 이하), 바벨론 귀환 이후에 사람들이 이곳에 다시 거주하기 시작했다. BC 164년경 유다 마카베오는 이두매가 침공했을 때 고르기아스 군대를 멸한 후 아둘람으로 향했다. 고르기아스는 안티오커스 4세인 에피파네스의 총독 중 한 사람이다.
바위로 된 이곳은 성경의 사건을 연상시키는 굴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수풀로만 덮여 있다. 주위에는 꽤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이곳에서 북쪽을 향해 보면 유대인 정착촌인 아데렛(Aderet)이 가까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