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원희 목사(한국성지미디어 원장)
다윗이 사울을 살려 준 엔게디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삼상 24:1)
엔게디는 쿰란 남쪽으로 35㎞ 지점에 있는 샘과 이에 딸린 개울의 이름으로, 사해 서쪽에 있는 석회석 벼랑 아래서 약 30톤의 물이 솟아나와 이루어진 곳이다. 유대 광야 중에 가장 이상적인 오아시스인 엔게디 근처에는 굴이 많다. 또 약 200m 높이의 엔게디 폭포는 남부 지방의 유일한 폭포이며, 그 부근은 자연보호 지역으로서 뛰어 노는 들짐승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엔게디는 소금 성읍과 함께 여호수아 15장 62절에 나오며, 역대하 20장 2절, 아가 1장 14절, 에스겔 47장 10절 등에 소개되어 있다.
특히 아가 1장 14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포도가 유명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도망하던 중 엔게디에 숨었고(삼상 23:29, 24:22), 그 사실을 안 사람이 사울에게 고자질을 해서 무려 3천 명이나 이끌고 이곳까지 추격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이 숨어 있는 엔게디의 한 굴에서 볼일을 보던 중 오히려 다윗에게 죽임 당할 위험에 처한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을 베었고, 이에 사울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다윗 쫓기를 그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엔게디는 BC 3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유적이 남아 있고, 실제로는 그보다 이전인 청동기시대(BC 5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신전과 제단의 유적이 엔게디 샘 위에 세워졌으며, 물과 관련된 의식이 이 신전에서 행해진 증거를 볼 수 있다.
나에게 가장 감명 깊게 다가오는 것은 아직도 남아 있는 굴이었다. 계곡을 따라 걸을 때 북쪽 절벽 사이의 굴을 바라보면서 그 옛날 자신를 죽이기 위해 끈질기게 추격하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죽이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신 것”(삼상 24:6)이라며 죽이지 않았던 다윗의 심정을 생각해 봤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조그만 해를 끼치거나 손해를 입혀도 원수같이 생각하기 쉬운데, “원수 갚는 것이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고 한 다윗의 고백을 가슴속에 새겨 본다.
사울을 장사지낸 길르앗 야베스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모든 장사들이 일어나 밤새도록 달려가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내려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가서 거기서 불사르고 그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삼상 31:11~13)
길르앗 야베스는 오늘날 요르단 북부에 있다. 이 길르앗 야베스는 벧산 남동쪽 15㎞ 지점으로, 요르단 지역의 와디 엘 야비스(Wd. el-Yabis, 그릿 시내), 북쪽에 있는 텔 아부 카라즈(T. Abu Kharaz)와 동일시한다. 이곳은 요단 강 유역 동북쪽 지방에 있어서 가장 비옥한 지역이다.
텔 아부 카라즈에서는 청동기시대 초기부터 비잔틴시대까지의 도기 조각들이 지표면에서 발견되어 오랜 기간 동안 사람이 이곳에 주거했음이 밝혀졌다. BC 3200년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이스라엘 시대인 BC 13세기에서 6세기까지의 도기 조각들이 가장 많이 나타났다. 도기 조각 외에 무덤과 사원이 발견됐으며, 철기시대의 요새와 저수조도 발견됐다.
성경에는 길르앗 야베스에서의 사건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사사시대에 길르앗 야베스에 있는 처녀 400명은 베냐민 지파의 용사 600명 중에 400명의 아내가 되기 위해 사로잡혀 왔고, 나머지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다(삿 21장). 후에 사울이 왕이 된 후 얼마 안 되어 암몬인의 왕 나하스가 이 성을 포위하고 항복 조건으로 모든 사람들의 오른쪽 눈을 뽑을 것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사울 왕의 도움으로 구조되었던 적도 있다(삼상 11:1~11).
사무엘상 31장은 이곳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그런 사울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들은 사울 왕 부자가 블레셋과의 길보아 산 전투에서 전사한 뒤 목이 잘린 채 벧산 성벽에 못 박혀진 사실을 듣고, 그들의 시신을 거둬 자신들이 사는 곳에 매장해 주었다(삼상 31:11~13).
나는 이 야베스 꼭대기에서 멀리 벧산을 바라보며, 은혜를 갚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약 18㎞나 떨어진 벧산으로 밤새 달려가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가져다 장사지낸 야베스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게도 은혜를 갚아야 하지만, 우리를 위해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을 위해 평생 못 갚을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살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