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원희 목사(한국성지미디어 원장)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쓴 마게도냐 지역의 빌립보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고후 1:16)
빌립보는 에게 해에서 16㎞ 내륙으로 들어가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있다. 이곳의 이름은 본래 ‘크레니데스’(Krenides)이던 것을 마게도냐 왕 필립 2세(재위 BC 359~336)가 지역을 크게 확장하고 자기 이름을 따서 빌립보라고 변경한 것이다.
이곳은 바울과 실라가 전도 여행 중 들렀으며, 기도하러 가다가 귀신 들려 점치는 여종을 고쳐 준 것 때문에 그 주인들에게 고발당해 감옥에 갇혔던 곳이다. 그러나 감옥에서 기도하며 찬송하는 가운데 갑자기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리게 되었고, 죄수들이 도망간 줄 알고 자결하려는 간수에게 복음을 전해 간수와 그 가족이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행 16:12~34).
이곳에서 발굴된 라틴어 비문을 보면 빌립보에서 자색 옷감 무역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가 바울의 전도를 받고 제일 먼저 믿어 빌립보교회의 초석이 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준다(행 16:11~15).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에게 받은 신앙 유산을 잘 간직해 바울이 마게도냐를 떠날 때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 여러 번 도왔고(빌 4:15~16), 로마 옥중에 있을 때에도 에바브로디도 편에 위문품을 보내기도 했다(빌 4:18). 이에 바울은 빌립보서를 써서 그들을 위로했다.
빌립보 지역은 대규모 유적지로 특히 바울의 감옥으로 여겨지는 감옥 터가 보존되어 있다. 또 빌립보에는 회당식 교회인 바실리카 A와 B가 있는데, 남아 있는 바실리카 B의 웅장한 기둥과 벽체 일부만 보아도 이곳에 기독교가 얼마나 부흥했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외에도 도시 서쪽으로 1.6㎞ 지점 강기테스(Gangites) 강 부근에 로마 시대의 아치 폐허지가 있는데, 오늘날 이 강기테스 강가에는 루디아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성지 현장은 남아 있는 흔적만으로도 성경의 역사적인 사실을 입증시킨다. 또한 그 현장에서 보는 말씀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굳게 해 준다. 이것이 성지 현장에서 얻는 특별한 은혜다.
바울이 들창문을 통해 도망했던 다메섹 성벽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고후 11:32~33)
다메섹은 남서쪽으로 헤르몬(Hermon) 산을 안고 안티 레바논(Anti-Lebanon) 산맥의 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다메섹은 오랜 옛날부터 군사상, 상업상으로 매우 중요한 도로가 이곳에서 교차한다는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언제나 상업 및 종교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담당했다.
BC 2000년 말, 한때 앗수르의 세력과 다툴 만한 힘을 가졌던 아람 왕국의 수도였던 다메섹은 흥망성쇠의 역사 속에서 오늘날 대단히 번화한 시리아의 수도로 남아 있다. 다메섹의 시장 중심가를 지나면 직가라고 하는 거리가 있는데, 이 거리는 사울이 기독교인을 핍박하려고 달려오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곳이다. 그때 아나니아라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사울이 기도를 받고,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다시 보게 되어 하나님께 헌신한 곳이다. 따라서 이곳은 바울에게 제2의 출생지요, 영적으로 거듭난 장소다(행 9). 그러나 바울의 개종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하자 바울이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가 도망갔던 장소이기도 했다. 현재 다메섹에는 바울이 환상을 본 장소와 아나니아 예배당, 그리고 바울이 광주리를 타고 도망한 곳 등이 성지 순례 장소가 되고 있다.
나는 다메섹에 있는 바울의 성지를 돌아보며 바울 한 사람의 회심으로 오늘날 기독교 복음이 아시아와 전 유럽으로 퍼져나간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실감했다. 그리고 성지의 현장을 찾는 나의 발걸음 역시 바울의 뒤를 따라 오직 복음의 발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다메섹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