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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4월

암몬 자손의 도성 랍바 / 압살롬이 반역 후 입성한 다윗 성

과월호 보기 이원희 목사(한국성지미디어 원장)



암몬 자손의 도성 랍바

“그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삼하 11:1)

랍바는 오늘날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으로 성경에서는 ‘왕성’과 ‘물들의 성’(삼하 12:26~27)으로 불렸으며, 완전한 이름은 ‘암몬 족속의 랍바’(신 3:11; 삼하 12:26)이고 이를 단축해서 ‘랍바’라 한다(삼하 11:11; 렘 49:3). 헬레니즘 시대에 톨레미 필라델푸스(Ptolemy Philadelphus, BC 285~246)에 의해 재건된 후 필라델피아(Philadelphia)로 불리게 되었으며, 후에는 이 명칭이 사라지고 암만이라고 불리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대 랍바의 유적지는 오늘날 암만 시내의 해발 839m 언덕 위에 있다. BC 21세기 초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랍바는 다윗 때 요압에 의해 함락되었고(삼하 12:28), 이곳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역군 사역자가 되었다(삼하 12:26~31). 우리아가 다윗의 밀서에 따라 성을 공격하다가 죽임을 당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은 후에는 독립을 쟁취해 트랜스 요르단 지역의 북이스라엘을 압박했다(암 1:13~15; 렘 49:1~3). 선지자들은 암몬인들에게 분개해 랍바의 파멸을 예언했다(렘 49:2~3; 겔 21:20; 암1:14). 이후 랍바는 이스라엘 멸망 후에 앗수르의 지배를 받았고, 계속해서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고대 도시 랍바는 지금까지도 웅장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곽 내에서 로마시대의 유적이 가장 많이 나왔다. 특히 두 개의 성소 폐허와 집단 제사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또한 비잔틴시대의 교회 터가 있고, 알현실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 밀곰(몰렉) 신전 터에는 기둥이 남아 있다. 외곽으로는 웅장한 성벽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요압 장군이 다윗 왕의 밀서를 받아 우리아를 죽게 한 사건을 좀 더 실감할 수 있게 한다.
나 역시 랍바 성의 웅장한 성벽을 보며 한 인간의 나약함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절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그렇기에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압살롬이 반역 후 입성한 다윗 성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고 아히도벨도 그와 함께 이른지라”(삼하 16:15)

예루살렘(Jerusalem)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수도로, 이스라엘의 중앙 부분인 중앙 산악지대의 약 800m 고지 위에 세워진 성읍이다.
예루살렘에 대한 성경의 최초 언급은 여호수아 10장 1절에 나오며, 창세기와 시편에서는 ‘살렘의 성’으로 나온다. 성경에 나타난 예루살렘에 대한 명칭은 ‘시온’(애 2:13; 슥 9:9; 마 21:5), ‘다윗 성’(삼하 5:4~10; 왕상 8:1; 눅 2:11), ‘거룩한 성’(느 11:1; 마 4:5), ‘하나님의 성’(시 46:4~5; 사 60:14) 등으로 나타나 있고, 오늘날은 오스만 제국 때 세워진 성벽을 기준으로 현대의 예루살렘 도시와 구별하기 위해 성벽 안쪽 지역을 ‘옛 성’이라고 부른다.
예루살렘은 아브라함 당시 이미 한 개의 성읍으로 존재했으며(창 14:18), BC 13세기경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당시에는 여부스 족의 저항으로 정복하지 못하다가(수 15:63) BC 1000년경 다윗에 의해 시온 산성인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다윗 성이라고 불렸다(삼하 5:7). 그 후 다윗 왕이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부터 크게 번성하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은 성지 중의 성지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수도요, 예수께서 마지막 십자가를 지신 구원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에는 수많은 성지와 그와 관련된 기념 교회들이 남아 있다. 특히 본문과 관련된 예루살렘 지역은 통곡의 벽에서 나와 분문을 지나 기드론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 경사지 부분에 위치해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분문 앞 지역은 당시 유적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기드론 골짜기 아래까지 펼쳐진 다윗 당시의 예루살렘 성 부분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이곳에 서면 그 옛날 부왕인 다윗을 몰아내고 반역한 압살롬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들에게 쫓겨 다급하게 도망한 다윗의 참담한 심정이 헤아려진다. 훗날 압살롬이 죽었을 때 오히려 그런 자식을 위해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하며 통곡했던 다윗! 이것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요 더 나아가 죄인 된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인 것이다. 기드론 골짜기에는 압살롬이 생전에 세웠다는 기념비가 있다. 옛날에는 유대인들이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돌을 던지며 불효에 대한 교육을 자식에게 시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