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원희 목사(한국성지미디어 원장)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벳새다 들판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막 6:41~44)
예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사건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었다. 그러나 그 장소에 있어서는 약간씩 다르게 나타난다. 마태복음(14:15), 마가복음(6:35), 누가복음에는 빈 들(9:12)로 나오고, 요한복음에는 잔디가 많은 곳(6:10)으로 나온다. 그리고 제자들이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구하도록 한 곳에 대해서도 마태복음은 마을로 가서, 마가복음은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누가복음은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먹을 것을 구하도록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곳은 잔디가 있는 들판이고, 마을(촌)과는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성지순례를 가면 오병이어 기적 교회를 순례하게 되는데, 이곳은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났던 곳에서 꽤 먼 곳에 위치해 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 기적을 베푼 곳은 벳새다 들판이고, 벳새다 마을은 벳새다 들판에서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져 있다. 그런데 오병이어 기적 교회는 벳새다 들판에서부터 서쪽으로 11㎞나 떨어져 있다. 그 이유는 이 교회가 도로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오병이어 모자이크를 중앙 앞으로 오도록 설계해서 세웠기 때문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들판을 걸으면서 예수께서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해 보신 이유를 묵상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과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손에 들고, 오천 명 넘는 사람들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을까? 나 역시 제자들처럼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손에 들려졌을 때 오천 명 이상을 먹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음을 잊지 말자. 이것이 기적의 현장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다.
예수께서 변모하신 변화산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막 9:2)
예수께서 변형된 모습을 보이신 높은 산이 정확히 어떤 산인지, 성경에 언급되지 않지만 대체로 헬몬 산이나 다볼 산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헬몬 산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최북단에 있는 가장 높은 2815m 정도 되는 곳이며, 다볼 산은 이스르엘 평야를 남쪽에 둔 588m의 중절모자 모양을 한 약간 가파른 산이다.
다볼 산 정상에는 십자군 시대의 교회를 헐고 요새를 건축할 때 만든 바람문(The Gate of the Wind)이라는 돌문이 있는데, 현재의 것은 1897년에 보수한 것이다. 이 문을 지나면 두 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다. 그중의 한 교회는 십자군 시대의 교회 터 위에 1911년에 세운 그리스 정교회 소속의 엘리야 교회다. 다른 한 교회는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의 교회 터 위에 1924년 가톨릭에서 세운 교회이다. 이 교회의 입구에 들어서면 양 옆에 모세와 엘리야를 위한 기도소가 따로 있다.
이 산 중턱에 있는 다브리야(Dabburiya)라는 아랍인 동네는 여호수아 19장 12절에 나오는 다브랏(Daberath) 동네로 알려지며,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후 귀신 들린 소년을 고쳐 주신 곳으로 해석한다(눅 9:37~43).
다볼 산 정상에 올라 이스르엘 평야를 바라보며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희게 할 수 없는 희고 밝은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막 9:7) 하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아들 예수님과 그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모습을 직접 지켜 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한없이 부러웠다. 베드로가 주님께 말한 “여기가 좋사오니”라는 말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산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는 고통의 현장을 먼저 생각하고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산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