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원희 목사(한국성지미디어 원장)
맹인을 고치신 곳, 여리고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막 10:46)
예수께서 소경을 고치신 사건에 대해서 마가복음은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 소경 바디매오를 고치셨다”(막 10:46)고 기록하고 있다. 반면 마태복음에서는 “여리고에서 떠나갈 때 맹인 두 명을 고치셨다”(마 20:29)고 기록하고 있으며, 누가복음에서는 “여리고에 가까이 가실 때에 한 맹인을 고치셨다”(눅 18:35)고 조금씩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복음서의 기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여리고가 두 곳이기 때문이다. 곧 여리고는 여호수아에 의해 무너진 구약의 여리고와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신약의 여리고, 즉 현대 여리고가 있다. 즉,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구약의 여리고 입장에서 기록한 것이고, 누가복음은 신약의 여리고 입장에서 기록한 것이다.
구약의 여리고와 신약의 여리고는 약 2km 정도 떨어져 있다. 구약의 여리고는 텔(인공 언덕) 형태로 BC 7000년경에 건축되었다. 이 여리고는 여호수아에 의해 멸망 당했는데, 성지순례 시 구약의 여리고에서 망대의 규모를 보면 하나님에 의해 무너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한편 신약 시대의 여리고는 구약 시대의 여리고보다 남쪽에 위치해 있다. 예수께서는 신약의 여리고에 여러 번 오셔서 소경 두 사람의 눈을 뜨게 하셨고(마 20:29~34), 세리장 삭개오를 회개시키셨다(눅 19:1~10). 구약과 신약의 여리고 사이에는 삭개오 나무라고 불리는 늙고 큰 돌무화과나무가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비유 중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신약의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눅 10:30~37).
여리고는 지중해 해면보다 250m나 낮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다. 따라서 여름에는 매우 덥고 겨울에는 춥지 않아 부호들과 권력가들은 겨울 별장을 짓고 때를 따라 여리고에 와서 즐겼다. 성경을 볼 때는 그 사건과 말씀이 어떤 배경과 장소에서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말씀이 주고자 하는 내용을 보다 정확히 알 수 있다. 이것이 성지와 그 문화적인 배경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예수께서 나귀를 끌어오라고 하신 벳바게
“그들이 예루살렘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막 11:1~2)
벳바게의 뜻은 ‘무화과들의 집’이란 뜻으로 3세기의 신학자 오리게네스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해 벳바게를 ‘승리의 집’, ‘만남의 집’, ‘나귀 타기의 집’이라고 불렀고, ‘산골짜기의 집’으로도 묘사했다.
벳바게는 예루살렘의 감람 산 동쪽 부분 산등성이에 있는 예루살렘의 한 변두리 마을로,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거치게 되는 마을이다. 오늘날 아랍 마을인 베다니로 넘어가는 감람 산 동쪽의 아부 디스(Abu Dis)를 벳바게로 본다. 이곳은 베다니 남서쪽, 감람 산 동남쪽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군중들의 ‘호산나’ 환영 속에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다(마 21:1~11, 막 11:1~11, 눅 19:28~40).
벳바게에는 4세기와 십자군 시대에 기념 교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있는 교회는 1883년 프란체스코 교회가 지어 1954년에 보수된 건물이다. 그 안에는 1m 정도 크기의 네모난 돌이 있는데, 이 큰 돌의 네 면에는 라틴어가 써 있고 그림이 그려져 있다. 북쪽에는 나귀 새끼를 탄 그림, 동쪽에는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하는 그림, 남쪽에는 나사로가 부활하는 그림이 있고, 서쪽에는 라틴어로 ‘벳바게’라고 써 있으며, 이 돌은 예수께서 나귀를 타실 때 디뎠던 것이라고 전해진다.
오늘날에도 고난주간이 되면 이 동네에서는 제사장을 나귀에 태우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재현한다. 일반적으로 성지순례 시 잘 들르지 않는 곳이지만 20분 정도 여유만 있다면 이곳에 가서 예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모습을 그려보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