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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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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믿음의 사람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함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마련이기에, 한 번 넘어졌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그 뜻에 합당한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깨닫느냐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전쟁을 시작해 여리고 성에서 치른 첫 전투에서 감격스런 승리를 얻었지만 그 다음 전쟁이었던 아이 성 전투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여리고 성의 승리와 아이 성의 패배에서 이스라엘은 무엇을 배웠을까요? 이제 이스라엘이 다시 성결을 회복해 두 번째 전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나 승리를 거두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하나님께서는 아이 성 전투에 몇 명을 동원하라고 하십니까? 처음 아이 성을 공격할 때 예상했던 필요 전투 병력은 몇 명이었습니까?(1절, 참조 7:3)
-> 하나님께서는 전 병력을 다 동원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이 성은 작은 성이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초기 전투에서 삼천 명 정도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체적인 전투 전략을 설명해 주십니다. 그 전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이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지시한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2, 4~7절).
-> 하나님께서는 복병을 두는 전략을 세우라고 지시하셨고,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한다. 여호수아는 복병이 성읍 뒤로 가서 매복한 뒤, 여호수아가 속한 군사들이 거짓으로 퇴각할 때 아이 성 백성들의 전투력 공백을 틈타 성을 점령하도록 명령한다.

3. 아이 성 뒤에 매복한 인원은 몇 명입니까? 처음 아이 성 전투에 참여했던 사람의 수와 비교해 봅시다. 이 차이에서 무엇을 느낍니까?(3절, 참조 7:4)
-> 매복한 인원은 삼만 명이었다. 처음 아이 성 전투 때에는 삼천 명쯤 아이 성으로 올라갔다. 매복한 인원만 해도 이전 전투에 참여했던 전 병력의 열 배다. 첫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힘을 과신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해서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태도다.

4. 여리고 성 함락 때와 같이 초자연적 기적뿐 아니라, 매복 작전과 같은 일반적인 작전을 수행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일상 가운데에서도 역사하신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만 하나님의 말씀과 기적을 찾고 일상 영역에서 자기 힘을 의지하는 것은 참 믿음이라 할 수 없다.

5.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전력을 다하는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모든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정작 그 ‘모든 힘’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은 방법이 포함되곤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 수동적인 태도를 합리화하는 데 사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말씀을 따라 힘을 다해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6. 그리스도인은 삶 속에서 믿음의 전쟁을 수행하며 군사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눈앞에 주어진 과제를 해결해야 할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세는 무엇입니까? 오늘도 주님을 섬기며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여리고 성을 지나 이스라엘이 마주한 아이 성은 작은 성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전력을 다할 필요 없이 소수의 병력으로 충분히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 묻는 과정도 거치지 않았습니다. 만약 하나님께 물었다면 아간의 범죄를 드러내시고, 그 전쟁에 군사를 보내지 못하게 막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전력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입니다. 이 전쟁은 절대적 성결과 겸손한 의뢰가 없이는 승리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의 싸움을 감당할 때에도 이 원리가 필요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영적 전투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