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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많은 사람이 교회를 눈에 보이는 건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각 지체들이 이룬 한 몸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즉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을 의미합니까?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사람을 뜻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고 새 생명 얻은 백성을 말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생명들이 모여서 이룬 교회는 이들에게 젖을 공급하는 신령한 공동체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통해 공급되어야 할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건강하게 자랄 수 없습니다. 기원 후 1세기 초대 교회의 구성원 중 많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선(先)지식이 없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런 이방인으로 구성된 소아시아 지역 교회들의 성도들에게 그들이 어떤 신분이며, 교회를 통해 어떤 것들을 얻어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본 성도들로서 버려야 할 것과 사모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1~2절)
2. 사람에게는 버린 바 되었으나 하나님의 보배로운 산 돌(living stone)이신 예수님께 나아갈 때, 성도들은 어떻게 됩니까?(4~5절)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3. 모퉁잇돌이신 예수님이 그분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7~8절)
4.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 뜻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삼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9~10절)
5. 베드로가 제시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새롭게 허락하신 신분에 대한 자각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6. 교회나 공동체가 어떤 양육과 훈련을 제공하며 은혜의 통로가 되고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 가야” 하는 당위성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면 어떻게 변화를 모색해야 할지 결단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예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는 진리는 모든 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교리는 ‘칭의(Justification)’라고 가르칩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서 의롭게 여김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가끔 문제가 되는 것은 실제로는 완전히 의로울 수 없는 사람이 의롭다고 선포됨으로 말미암아 현실적인 삶에서 오히려 이율배반과 모순의 자괴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이중칭의(double justification)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구원의 말씀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해 가는 과정이 반드시 포함됨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 가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그 삶에 주를 사랑하는 열심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포기한다면 성장이 멈추어 나이가 들어서도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는 ‘아기 어른’의 비참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