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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무너진 관계를 다시 세우는 화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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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수백 년을 견뎌 왔던 남대문이 한 사람의 방화로 몇 시간 만에 불타서 사라지는 모습을 모든 국민이 TV로 지켜보았습니다. 세우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기는 아주 쉬운 법입니다. 사람들이 한번 허물어뜨린 것을 다시 세우려면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들의 힘으로 다시 세울 수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 가능한 일이고, 자신들의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대책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잘못으로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들을 가까이하실 수가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죄를 용납할 수 없는 공의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심판을 선포하셔야만 했고, 이미 본성상 부패한 죄악으로 오염된 인간은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잃어버린 상황이었습니다.
해결의 실마리는 인간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셔야 하는 일이었지만, 하나님도 죄를 용납하실 수는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구원의 지혜로 자신의 아들을 화해자로 삼으셨습니다. 이어질 수 없는 관계를 회복시킬 유일한 대안으로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화해자가 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화해의 사역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하나님의 성소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은 무엇입니까? 직분을 맡은 자들이 담당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1, 7a절)

2. 아론과 그의 가문에 제사장 직분이 주어짐으로 고라의 반란이 일어났습니다(참고 16:1~50). 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제사장 직분의 성격은 무엇입니까?(7절, 참고 16:3~7)

3. 아론 가문과 레위 지파에게 하나님이 당부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 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효과를 가져다줍니까?(5절)

4. 하나님이 레위인을 소유로 삼으시고 그들을 다시 제사장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2, 6절)

5. 하나님과 백성들을 이어 주는 직분을 감당하는 자로서 갖게 되는 심적 부담을 헤아려 봅시다. 갈등이나 분쟁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직분자의 어려움은 무엇일까요?

6. 사역이나 삶의 현장 가운데 내가 화해자의 위치에 서야 하는 경우는 없는지,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화목을 가져올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히브리서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에 관해 언급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번의 제사로 하나님과 이어지는 교제의 통로를 영원토록 유효하게 만드셔서, 그분을 의지하기만 하면 누구라도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 사이에 인간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하지만, 제사장의 직무는 인간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버겁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길 수 있는 것은 분명 큰 특권이며 축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을 “선물”로 주었다고 표현하시지만, 죄인인 인간이 이 일을 감당하려면 생명을 담보해야 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백성들을 대신해 제사드리는 제사장이 거룩하지 못할 경우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화해자로 서는 일은 생명이 요구되는 사역입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생명을 바쳐 우리를 위한 중보자가 되셨듯이, 그분의 뒤를 이어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우리 역시 화해의 사역자로서 생명을 걸고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