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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길을 잃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처음에는 바른 길을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부모와 함께 길을 가다가 어느 순간 길을 잃고는 고아와 같은 처지에 놓인 아이들이 있습니다. 부모는 분명히 있지만 현재 그 아이는 고아와 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정체성을 찾으려면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부모가 바른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자기 아이를 끝까지 찾아 나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자녀인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고아와 같이 버려진 죄악의 상태로 남기를 자청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녀를 끝까지 찾아 나서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도 잃은 자신의 자녀들을 도로 찾으시려는 애끓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죄인으로 남아 그 죄악의 결과들을 먹고 사는 가련한 자녀들을 다시 찾는 간절한 부정(父情)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삭개오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삭개오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삭개오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2~3, 7절)
2. 세리장이었던 삭개오가 나무에 올라가기를 선택할 만큼 그의 내면에는 어떤 간절함이 있었던 것일까요?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젊은 관원과 맹인 거지의 행동과 비교해 볼 때 어떤 점이 다릅니까?
3.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머물겠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5절)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왜 수군거리며 마음에 불편함을 느꼈을까요?(7절)
4. 예수님을 한번 보기 원했던 삭개오의 열정과 예수님이 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쳐다보시며 삭개오의 집에 직접 가겠다고 말씀하신 열정을 비교할 때 어떤 것이 더 강렬했을까요?(5절, 동사(verb)를 유의해서 살펴봅시다.)
5. 예수님이 구원을 선포하시며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셨을 때 삭개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9절) 전혀 구원받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듭니까?
6.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한 삭개오의 반응은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보인 삭개오처럼(8절), 내가 결단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예수님이 삭개오를 칭찬하시고 구원을 선포하신 이유는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약속의 자녀였던 그는 잃어버리고 버려진(lost)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찾으시고 부르시는 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죄인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꾸중하셨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본마음은 바리새인들을 적대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경책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 자는 감동받습니다. 죄인인 줄로만 생각하고 스스로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자신을 다시 찾아 준 아버지를 위해 새로운 삶을 결단하며 변화의 조짐을 보여 줍니다. 억지가 아니라 기쁨과 감사가 넘쳐흘러 자연스럽게 자녀의 원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