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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사람들이 가진 욕망 중에서 ‘명예욕’이 가장 끈질기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다른 욕심은 다 포기해도 자기 이름을 내고자 하는 욕심은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높임을 받는 것이 최상의 덕목이 된 사회의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초기 사역을 하실 즈음에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귀족들은 백성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에 동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들의 온갖 악행과 비행을 드러내는 단계에 이르자 그들 안에 보호본능이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을 비난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권위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도전으로 받아들이며, 그 권위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살해하려는 계획까지 세우게 됩니다. 멈추지 못하고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그들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거짓되게 만들어진 허상과 같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파멸의 길로 치달아 가고 있음을 본문은 보여 줍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예수님이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시자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19절, 참고 9~18절)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방법으로 예수님을 잡으려 합니까?(20절, 참고 19:45~48)
3.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문제에 관해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한 의도는 무엇입니까?(22절) 예수님이 세금을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신다면 군중 가운데 어떤 반응이 있었을까요? 반대로 바치지 말라고 하신다면 종교 지도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4. 간교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사람들의 입을 닫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대답이 단순히 타협과 수용만을 뜻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대답에서 제시된 원리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5. 비난하고 책망할 꼬투리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조그만 말실수에 넘어져 자신의 권위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6. 사람들을 이용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태도는 없었는지 돌아봅시다. 사람을 두려워하여 꼭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 적은 없습니까? 불리한 환경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대변하고 진리 편에 섰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고 모략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의연하게 대응하십니다. 상황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변형시키며 맞추어 갈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진리의 원리에 입각하여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악한 자들의 모든 궤계를 무산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타협이나 협상이 아니라 원리를 말씀하심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우리 삶의 문제도 이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원리를 말할 때 진정한 권위가 세워집니다. 그 권위로 사역하면 자신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에 동참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