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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다른 복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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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서로의 다름에 집중하지 말고 공유점에 집중하자”는 것이 최근의 “관용”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 포용하려는 태도는 분명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꼭 필요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생명의 문제, 영생의 문제와 관련된 복음과 진리를 다룰 때에도 이런 관용과 포용의 정신이 필요한 것일까요?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어떤 주장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데에는 그것이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주장(사도됨)이 누구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합니까?(1절)

- 바울은 자기의 사도됨이 사람들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과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2. 바울이 가르친 복음의 핵심 내용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4, 6절) “은혜”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대로 이야기해 봅시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자기 몸을 주셨는데, 이는 은혜로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은혜란 대가가 없다는 뜻이다. 즉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름으로써 얻는 것이 아니라 거저 주어진 것이다.


3. 바울은 자기가 전한 복음과 다른 내용의 “복음”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7~8절)

- 그 누가 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가르침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까지 철저하게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4. 사도 바울이 자기가 전한 복음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또 배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10절)

- 바울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거나 그들을 만족시키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말하고 행동하였기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


5. 친분 있는 사람 또는 직장 상사가 나에게 “모든 종교에는 다 구원이 있다”거나, “정통과 이단의 구분은 자의적인 편견이다”라고 주장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만약 바울이라면 어떤 태도를 보였겠습니까?


6.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온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하나님 말씀이야말로 따라야 할 절대 진리임을 고백합니까? 그렇게 고백한다면 나는 어떻게 나의 고백을 삶에서 증명하고 있습니까?



삶의 열매를 거두며

우리가 다문화, 다종교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에 수많은 타종교에 대해서 관용의 정신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는 그들도 옳다거나, 우리의 신앙이 여러 종교들 중 하나라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같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저들이 구원 얻지 못할 허탄한 종교에 속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신앙생활에 타종교나 이단들의 영향력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경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이런 분명한 경계선을 긋지 못한다면, 결국 이 혼탁한 문화 가운데 복음의 생명력은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