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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일반적으로 사람이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면, 비로소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전에 부모님에게 했던 잘못된 행동과 말에 대해 후회를 하기도 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마치 부모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자녀처럼 창조주 하나님의 심정을 잘 모르는 선지자가 나옵니다. 바로 요나입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치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그 소명을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이후 그는 하나님의 소명에 집중하여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재앙의 메시지를 니느웨에 선포합니다. 하지만 요나는 하나님의 본심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본문을 통해 함께 살펴봅시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요나는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니느웨에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어떻게 반응하며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말합니까?(1~3절) 이에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4절) 하나님과 요나의 시각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 매우 싫어하고 성내면서 왜 고국에 있을 때 이렇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냐고 말했다. 또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는 하나님이신 줄을 이제 알았다며 생명을 거두어가 달라고,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고 따지듯이 말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요나에게 성내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셨다.
: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애가 크신’(2절) 하나님의 성품은 옳고 좋은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그것마저도 자기의 대적에게 유익하게 된다는 것 때문에 화를 내었다.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으므로 함께 나눠 보자.
2. 초막을 짓고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기다리는 요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준비하여 주십니까?(6절) 그것은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7~8절)
: 박넝쿨을 준비하여 주시지만 이튿날 새벽에 벌레로 말미암아 시들어 버린다.
3. 스스로 죽기를 구하는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물으십니까?(9절) 하나님께서는 왜 요나에게 이러한 상황을 겪게 하실까요?(10~11절)
: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고 물으셨다.
: 요나가 자신이 재배도 하지 않은, 하루 사이에 났다가 말라버린 박넝쿨을 아끼듯이 십이만여 명의 사람과 가축이 많은 큰 도시, 니느웨를 하나님께서 아끼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이다.
4. 선지자인 요나가 창조주 하나님께 본인이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며 무엇을 느낍니까? 혹시 나에게도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대하여 마치 요나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영역이 있지는 않습니까?
: 하나님의 뜻에 대한 존중 없이 자신의 판단과 기준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지하고 어리석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 없어 보인다.
: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는 영역이나 부분을 나누어 보자.
5. 죄악 가운데 있는 세상, 나라, 열방, 각종 사회 영역 등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니느웨를 향한 마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곳에 복음의 메시지와 함께 심판의 메시지 또한 선포해야 합니다. 이러한 복음과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며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함께 나누어 봅시다.
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과 관계된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과 동일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가정, 직장, 교회,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기준과 마음으로 바뀌어야 할 부분을 찾아서 함께 나누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요나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하지만 니느웨를 아끼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을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율법을 들먹이며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쳐 주었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과도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본심을 이해하고 있습니까? 찰스 쉘돈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모든 행동을 하기 전에 예수님이라면 과연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까를 고민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고민하려면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기도하고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와 고민은 세계와 나라와 민족과 사회뿐 아니라 우리 실생활의 전 영역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그 마음과 합하기 위하여 애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