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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기독교는 희망의 종교입니다. 낙심한 이들에게 소망을 전하고, 회복의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조건적인
낙관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희망을 위해 절망을 선포합니다. 생명을 위해 죽음을 선포합니다. 중병에 걸린 사람에게
있어서 회복이란, 중병을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치료를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선지자 미가는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 중병에 걸렸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병으로 인해 그들은 회복 불능의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메시지를 전하는 미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그의 음성은 절절한 고뇌와 슬픔 가운데 메
아리치고 있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미가는 이전에 사마리아(북이스라엘)가 우상숭배와 음란의 문화로 멸망할 것을 선포했습니다(참조 6~7절). 이후 사마
리아에 임한 하나님의 진노는 곧이어 어디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까?(9, 12절)
-> 미가는 사마리아를 회복할 수 없는 패망에 이르게 한 그 범죄가 유다에도 반복되고 있기에 유다도 임박한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긴박성을 “성문에 임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2. 큰 재앙이 북이스라엘에 일어났고, 곧이어 남유다에도 임박했음을 바라본 미가는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8절)
-> 8절에서 미가는 ‘애통한다’는 의미의 표현을 5회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며 깊고 강한 슬픔에 사로잡혔음을 표현한다.
3. 미가 선지자가 유다의 열두 도성 즉 가드, 베들레아브라, 사빌, 사아난, 벧에셀, 마롯, 예루살렘, 라기스, 가드모레셋, 악
십, 마레사, 아둘람을 차례로 언급하며 무엇을 말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10~15절)
-> 각 성읍이 슬픔과 수치를 당하고 애곡할 것을 반복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수도 예루살렘에만 임하
는 것이 아니라 유다의 모든 성읍 가운데 이런 고통이 있을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4. 유다의 영적 상태는 사마리아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참조 5절). 미가는 결국 이들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
까?(16절)
-> 5절에서 미가는 사마리아가 주도적으로 죄악을 범했고, 유다는 예루살렘이 배도하게 하는 중심지였음을 병행법으로 표
현하고 있다. 이 두 도시로 상징되는 두 국가는 결국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하고 우상숭배를 하는 데 있어서 다르지 않았
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백성들은 북이스라엘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로잡혀 떠나게’ 될 것이다. 이 재앙은 미가의 시
대에 일어나지 않았으나, 이후 BC 586년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 성취되었다.
5. 오늘 본문은 재앙과 멸망이라는 사실도 말하고 있지만, 그 때문에 얼마나 큰 고통이 임할 것인지를 선지자 자신과 열두
성읍 거민들의 모습을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말하는 슬픔과 고통이 우리들 각자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6. 지금도 우리는 민족과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로 서지 못하고, 죄악의 길을 걷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공의 앞
에 두려워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와 같은 모습을 바라보는 성도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삶의 열매를 거두며
미가는 북이스라엘의 죄악과 패망을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죄악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린 유다 백성에게 임
박한 재앙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별반 다를 바 없이 하나님을 떠나 음란한 죄악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실을 전하는 선지자 미가는 임박한 심판 앞에서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하고 있습니다. 미가의 깊은 슬픔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했음을 보여 주며, 민족을 향
한 그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향해, 공동체를 향해 어떤 마음을 품고 계실까요? 만일 우리 안에 있는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이 아파하시며 그분의 공의가 훼손된다면, 이러한 현실 앞에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하나님
은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그분의 애통함을 가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