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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8월

안식일에 보이신 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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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신앙생활의 기쁨은 예수님과 함께하며, 예수님이 바라보시는 곳을 함께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주님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에 몰두하고 그것을 행하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는 신앙인들을 만납니다.
심각한 경우는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주님께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신앙생활의 비결은 주님과 시선을 맞추고, 마음을 나누는 데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보여 주신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의 행적을 함께 따라가 봅시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그곳에는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람들이 각각 그 사람을 주목한 이유가 달랐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2~3절)
-> 예수님은 그 사람의 장애를 치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셨다(3절). 반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기고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시는지를 보고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2.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무엇이었으며, 그것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과 행동은 무엇이었습니까? 또한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무엇입니까?(2, 5절)
-> 예수님은 사람들의 주된 관심이 손 마른 사람의 치유나 회복에 있지 않고 과연 예수님께서 그 장애인을 치유하심으로써 안식일을 범하시는지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그들 마음 안에 있는 ‘완악함’을 탄식하시며 노하셨다. 그리고는 장애인을 치유해 주셨다. 치유의 결과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의 동기를 더욱 강화시켜 주었다.

3.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바리새인들은 왜 반대했다고 생각합니까?(참조 마 12:11) 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의 변화를 받지 못했을까요?
->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아픈 사람을 치유하시는 행위를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의 사소한 조항을 지키는 일을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일보다 중요시 여겼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는 일과 죽이는 일’에 비유하며 바리새인들의 목적은 손 마른 자를 치유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예수님을 올무에 넣어 죽이고자 하는 일에 열심을 내는 자들이라 비판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회개의 기회를 주셨으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4. 예수님을 올무에 넣을 궁리만 하고 있던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어떤 마음을 품으셨습니까?(5절) 그런 예수님의 태도를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 예수님은 노하셨지만 또한 그들의 마음의 완악한 것을 탄식하셨다. 이는 마음 깊이 슬퍼하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의도를 간파하셨으므로 당연히 분노를 느끼셨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완악함에 대해서 안타까움도 느끼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조차 사랑하시며, 그들의 완악함에 대해서 스스로 심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 분이시다.

5. 우리에게는 바리새인처럼 굳어버린 종교적 관습이 없습니까? 그 관습들이 주님의 사랑의 성품을 드러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합니까, 아니면 부정적으로 작용합니까?
-> 오랜 종교적 관습으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란 상투어 남발하기, 들은 것은 많은데 헌신하지 않는 태도, 봉사하지 않거나 예배시간에 늦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마음, 새벽기도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을 신앙이 없다고 판단하는 태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6. 때론 바리새인처럼 실패했을지라도 정죄하고 판단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향해 사랑의 마음으로 훈계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느껴 봅시다. 그리고 가족과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들을 향해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돌봐야 할 사람들이 누가 있는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나눠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이스라엘 공동체 속에서 장애인들은 여러 부정적인 인식과 불이익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평생 괴롭혀 온 장애로부터 해방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그런 행동을 자신들의 종교적 삶을 지탱해 온 관습과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에게서 ‘생명을 살리는 일과 죽이는 일’에 대한 도전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거나 회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 온 종교적 관습이나 신앙의 경력보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한 영혼을 섬기고 돌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이번 주 우리가 돌봐야 할 사람은 없는지, 레위인이나 제사장조차 외면했던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라는 그 부르심 속으로 주님은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