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마음의 문을 열며
성경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멈추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내용이나 몸서리처지는 독설을 보면서 아연실색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본문은 아예 지나쳐 버리거나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씀의 준엄함 앞에서 고개를 돌려 버리기도 합니다.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 선포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저주는 그분의 자녀를 구원하시려는 심오한 섭리가 내포된 사랑의 채찍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해 저주마저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세상의 권력들은 누구입니까?(48~57절 참조)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훈련하는 도구로 세속적 수단을 사용하시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2. 본문에서 하나님의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 곧 여호와라는 이름이 계속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58~68절)
3. 백성들의 “마음을 떨게 하고 눈을 쇠하게 하고 정신을 산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65절)
4. 한번 약속하신 것을 변개치 않으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주를 선포하시며 처음 약속하신 것과는 다른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68절) 그렇다면 하나님도 상황에 따라 약속을 어기시는 분입니까?
5. 신약 시대 이후의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저주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저주를 다 제거하셨다고 생각합니까?
6. 죄악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다양한 방법을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내 삶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증거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삶의 열매를 거두며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생사화복, 전후좌우, 미래의 모든 일까지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시려고 사전 예방책을 강구하십니다. 어떨 때는 지독한 저주의 경고를 통해 그들에게 순결을 지켜 나가도록 요구하십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하여 저주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는 아픈 역사를 겪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어버이의 간절함으로 얼마나 설복하셨는지가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에게 내리시는 저주는 구원의 완성이라는 큰 그림으로 보면 축복의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