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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8월

금식보다 더 원하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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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대부분의 종교는 추종자들에게 많은 헌신을 강요합니다. 왜 사람들은 규율과 강제성이 있는 종교에 쉽게 매료될까요? 아마도 시각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의 종교적 열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당장의 결과물에 마음이 잘 끌립니다. 스가랴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70년 포로시대의 고통을 금식기도로 승화해 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금식기도를 처음 시작할 때의 정신과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나중에는 형식에 매여 일종의 종교 의식처럼 행하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금식기도를 함으로 마음의 정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이루기는커녕, 불의한 마음과 악한 행위가 가득한 생활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금식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봅시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벧엘 사람들이 스가랴에게 무엇을 질문합니까?(3절) 그 질문의 배경이 되는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8:19 참조)

 

 

2. 포로기와 포로귀환 시기 이스라엘의 금식 관습에 대해 하나님이 지적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5~7절)

 

 

3.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정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9~12절)

 

 

4. 이스라엘 땅이 황폐하게 된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14절) 하나님이 백성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13절)

 

 

5. 내 삶에 뿌리내린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신앙생활의 모습, 거짓된 종교 행위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

 

 

6. 이웃을 해하는 마음을 품지 않고, 진실과 인애와 긍휼을 나타내며 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잘 실천하고 있습니까? 이런 일을 가능케 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율법의 대강령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반드시 연결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고 사랑하는 지극한 겸손의 표현인 금식기도가 삶에서 이웃 사랑과 연결되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 거룩하고 겸허한 행위마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책망하십니다. “가장 신앙적이고 경건한 행위가 가장 타락할 가능성이 많다”라고 지적한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사보다 순종이 낫습니다. 형식적인 금식보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