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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아빠가 나에게 해 준 게 뭐가 있어요, 뭐가 있냔 말이에요?” 어린 딸아이가 어안이 벙벙해 서 있는 아빠에게 표독스럽게 쏘아 붙입니다. 이 순간 아버지의 눈망울에는 눈물이 서서히 고입니다. 아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이가 너무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에 기가 막힐 뿐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람을 너무도 사랑하신 하나님께 사람들은 이렇게 따집니다. “왜 하필 에덴동산 중앙에다 먹음직도, 보암직도 하고, 지혜를 줄 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선악과를 심어 놓으시고는 따먹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하신 것은 사람이 타락하도록 덫을 놓아두신 것이 아닙니까?” 제법 그럴듯해 보이지만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이 질문은 하나님의 마음을 찢어 놓습니다. 사람들은 풍성하게 허락하신 모든 것은 생각지도 않고, 금한 것 하나만을 가지고 따져 묻습니다. 그러고는 하나님께 모든 문제의 책임을 돌리려 합니다. 과연 그것이 합당한 일일까요?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을 향한 사랑은 우리의 부족과 연약함에도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사랑의 복음을 보여 줍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선악과를 따먹는 범죄 이후 아담과 여자가 한 말과 행동은 무엇입니까? (7~12절). 아담과 여자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2.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뱀에게 각기 다른 저주를 내리십니다(14~19절). 이렇게 다른 죄악의 결과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3. 저주가 선포되는 가운데서도 희망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습니까?(15절) 이 예언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4. 동산에서 쫓겨나는 인간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21절)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에서 사람을 쫓아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22~23절)
5.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된 이유가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적어도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죄를 범치 않도록 막으실 수는 있지 않았을까요?
6. 자신의 죄로 인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은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죄가 들어났을 때 수치심 또는 그와는 정반대로 평안함을 경험했다면 그 이유에 대해 나누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수십 년 동안 도망만 다니던 범죄자가 마침내 검거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 이제는 발 쭉 뻗고 잘 수 있겠네.” 죄를 해결하려면 숨어 있어서는 안됩니다. 회복은 죄가 밖으로 들어났을 때 시작됩니다. 범죄 후에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다녔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소극적으로나마 대답했을 때 회복은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배반당한 전적인 피해자이셨지만, 화해의 손길을 먼저 뻗어 오셨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문제의 짐을 지셨습니다. “여자의 후손”, 곧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 하나님의 독생하신 성자 예수님임을 오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시고 스스로 책임을 지시고, 그 지극한 사랑을 몸소 증명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