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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싸움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중재자가 분쟁하는 양편의 중간에서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화해시키는 역할을 수행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 사역이 그러하셨습니다. 그분 자신이 화목 제물이 되셔서 중간의 막힌 죄악의 담을 헐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세상을 주님께 연결시키는 ‘화해의 사도’의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중간자로서, 화해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랜 경륜과 인격의 성숙이 필요한 자리입니다. 자신이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은 화해자의 역할을 수행할 사람을 깊은 연단의 골짜기로 인도하시고 준비시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많은 불신 가운데서도 십자가 희생의 길로 자신을 복종시키는 한 사람이 부각됩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야곱이 애굽에 남아 있는 시므온을 걱정하면서도 아들들의 말대로 베냐민을 애굽에 보내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점은 무엇입니까?
2. 자식의 목숨을 건 르우벤의 맹세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야곱이 유다의 말에 마음을 바꾼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8~10절, 42:37~38 참고)
3. 창세기 38장에 나타난 다말 사건이 유다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이겠습니까?
4. 요셉을 팔 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한 말(37:26~27)과 지금 유다가 하는 말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유다에게서 어떤 변화가 느껴집니까?
5. 가족 간에 의견 충돌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합니까? 가족 가운데 누가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6.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생긴 불신은 어떤 결과를 낳습니까? 불신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족장 4세대 이야기 중 마지막 세대, 야곱의 열두 아들 이야기는 창세기 37장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주로 요셉의 파란만장한 삶을 중심으로 창세기 50장까지 긴 분량으로 서술되는데, 특이한 것은 38장에서 갑자기 넷째 아들 유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유다와 며느리 다말의 치욕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요셉의 이야기 가운데서도 유다의 독특한 위치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유다의 후손을 통해 장차 예수님이 오실 것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유다가 이스라엘 가족 가운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형제들의 치명적인 죄악이 끝을 모르고 달려갈 때에 유다는 중재자로서, 변화의 조짐을 보여 주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삶의 깊은 질곡을 통과하면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유다는 아버지와 형제들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간극을 메워 주는 화해자로 세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