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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죄책감의 순(順)기능으로, 양심에 의한 자기 통제를 가능케 하는 점을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죄책감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역(逆)기능적 요소가 더 많습니다. 자존감의 부족에서 기인되는 자기 정죄의 쓴 뿌리는 우리를 패배주의로 몰아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사형 집행관의 서슬 퍼런 도끼와 같은 자책감, 죄책감은 많은 인생을 험난한 길로 인도합니다. 하지 않아도 될 고민과 자기 비하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며 불행하게 삽니다. 이전에 저질렀던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현실에서 계속 반복되는 연약함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완전히 철창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알고 보니 자물쇠를 들고 철장 안에 계속 웅크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죄책감을 통해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죄책감이 우리 인생을 얼마나 구속하고 있는지 잘 보여 줍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요셉의 형제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15절), 어떤 태도를 보입니까?(16~18절)
2. 형들의 태도를 보면서 요셉이 운(17b절)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3. 요셉의 말이 형들에게 진심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19~21절)
4. 유언을 통해 요셉이 평생 붙잡았던 약속이 무엇임을 알 수 있습니까? 이것을 볼 때 무엇을 느낍니까?(24~25절)
5. 평생 자신을 괴롭히는 죄책감의 문제를 해결받은 경험이 있으면 나누어 봅시다.
6.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한 적이 있으면 나누어 봅시다. 어떻게 하면 이런 태도를 고칠 수 있을지 이야기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요셉의 눈물은 이 시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완전한 용서에 대한 체험도 했고 그렇게도 긴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해 왔건만, 씻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과거의 죄악이 우리 인생을 너무도 무겁게 짓누를 때가 있습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죄악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보고 싶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우리의 이런 어리석은 모습은 하나님의 연민과 사랑을 자극하고야 맙니다. 형들의 나약한 입장에 서서 ‘간곡하게 위로하는’ 요셉을 통해, 우리를 향해 흘리시는 하나님의 눈물을 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도 우리 입장에서 울어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십자가의 용서를 통해 그 누구도 결코 정죄할 수 없는 하나님 자녀가 되었음을 믿고, 그분이 주신 참자유와 정체성을 확실히 붙들라고 채근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