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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도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소수의 사람과만 깊은 사귐을 갖기 원하고, 어떤 사람은 많은 이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려고 노력합니다. 교회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들의 모임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구체적인 가치관에 있어서는 상당히 다양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어떤 모임이고, 무엇을 중요시하며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다양한 사람이 모인 만큼 다양한 생각이 공존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구성원이 어떤 원칙으로 교제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예수님께서는 양 백 마리 중 한 마리를 잃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행동한다고 말씀하십니까?(12~13절) 이는 무엇을 가르치기 위해 하신 비유입니까?
2. 만약 한 사람이 죄를 범했을 경우 어떻게 조치해야 합니까?(15~17절) 한 사람을 귀히 여겨야 하는데, 그의 죄를 덮어 주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서 규정한 방식으로 그의 죄를 지적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참조 신 19:15)
3. 죄를 짓고 돌이키지 않는 자에 대해 교회는 어떤 권세를 발휘할 수 있으며, 예수님께서는 이 권세를 어떻게 확증하십니까?(18~20절)
4.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과 같은 사람을 찾고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을 주신 후에 이어서 죄인을 대하는 방법과 회개하지 않는 자에 대한 교회의 권세를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5. 두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있으므로, 우리 역시 이 사명과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사명과 죄인을 견책해 바로 세우는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6. 우리가 속한 교회 공동체가 교회의 두 가지 사명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삶의 열매를 거두며
본문의 두 말씀은 종종 별개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함께 적용돼야 하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한 명의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고 바라야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가 그 죄 안에 머물러 있도록, 더 나아가 그 죄가 교회 내에 퍼지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교회가 개인의 자유만을 너무 보장해서 누군가 죄에 빠지는 것을 인식하지 못해서도 안 되고, 또 지나치게 공동체성을 주장해 그 모임에 함께하지 못하는 자들을 정죄하는 데 이르러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하나 따로 말씀하시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을 유지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함께 힘쓰고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