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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나는 주님을 누구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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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태복음 20:30~34, 21:6~11)

마음의 문을 열며
주위의 반대나 핍박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성도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꿋꿋이 믿음을 지킬까’ 하는 존경심과 부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반면 주위에 신앙을 반대하는 사람도 없고, 신앙생활에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데도 확신이 흔들리며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흔들림 없는 신앙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있었던 사건들을 통해 이 문제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에 맹인 두 사람은 어떤 행동을 했으며, 이에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는 어떻게 반응합니까?(20:30~31)


2. 두 맹인의 외침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대처하십니까?(20:32, 34) 그들이 예수님께 고침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무리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외쳤습니까?(21:9) 그런데 예루살렘 거민들의 질문에는 누구라고 말합니까?(21:11, 참조 16:14) 왜 이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4. 두 맹인과 무리도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와 왕으로 고백했지만, 이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5. 우리는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고백합니다. 우리의 고백은 두 맹인의 고백처럼 주위로부터 저지를 당한다 해도, 또 그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해도 외칠 수 있는 확고한 믿음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6. 우리의 신앙을 흔드는 문제, 또는 우리의 신앙을 저지하고 핍박하는 방해 요인은 무엇입니까? 각자 갖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나누고, 이를 해결하거나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눠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우리는 죄인이라는 자기 인식, 그리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소망이라는 절박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마음이 없어도 주위 사람들이 하는 대로 교회 생활을 따라할 수 있겠지만, 결국 무리의 신앙에만 머물고 말 것입니다. 무리들도 예수님을 따라다녔고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주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외쳤지만, 그들의 신앙고백은 그리 확고하지 못했으며, 결국 이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게 됩니다. 우리는 두 맹인처럼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주님께 부르짖기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시며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시는 그 음성 듣기를 갈망하는 자들이 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