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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한 국가의 정책을 결정할 때는 정치·경제적인 여러 이유를 따져 보고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합니다. 결국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지 여부가 정책 결정의 기준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준이 결정의 정당성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보게 되면 제대로 된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예후의 개혁도 이러한 이유로 아쉬움을 남깁니다. 예후는 왜 바알 신앙 척결과 금송아지 우상 금지를 동시에 시행할 수 없었을까요? 과연 예후의 이런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평가받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예후는 바알의 선지자들을 멸하기 위해서 어떤 계획을 세워서 실행했습니까?(18~20, 25~27절)
2. 하나님께서는 예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고, 어떤 상을 내리셨습니까? 한편 예후가 해결하지 않은 문제는 무엇입니까?(29~31절)
3. 예후가 전국의 모든 바알 선지자를 한꺼번에 몰살시키는 등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음에도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행했던 일(왕상 18장)보다 훨씬 더 큰 개혁을 단행해 바알 종교를 완전히 뿌리 뽑았으나, 금송아지 우상 숭배는 금지하지 못한 예후를 보며 무엇을 느낍니까?
5.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내 유익에 따라 일의 경중을 구분해서 행한 적이 있습니까?
6. 모든 사역을 행할 때 결정의 기준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어야 합니다. 현재 감당하고 있는 사역들에 있어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감당하고 있는지 자유롭게 나눠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예후는 북이스라엘을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금송아지 우상 숭배 금지 명령을 내리기에는 정치적으로 부담되는 부분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아합 왕조의 패망만을 놓고 단행한 바알 신앙 혁파는 여호와께로 돌아오기 위해 반드시 행했어야 할 금송아지 우상 숭배 금지 명령을 내리지 못함으로 빛이 바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행하는 일에 대한 기준과 정당성을 하나님께 둬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사역의 기준이 돼야하며, 내 이익과 유익을 구하고자 하면 불순물이 섞이게 됩니다. 이제 내가 맡은 일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세우는 데 합당한 일인지를 고민해 보고, 항상 하나님께만 기준을 두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