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09년 08월

무너진 바벨론의 최대의 적, 교만

과월호 보기

  마음의 문을 열며
창세기에서 볼 수 있는 인류의 죄와 그에 따른 사망의 기원은 뱀, 곧 사탄의 유혹이 어떤 성격이었는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사탄은 인간에게 너희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며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인류는 이런 거짓된 망상에 사로잡혀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계속 범합니다. 동방 시날 평지에 모인 사람들이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라고 말하며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결코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없는 인간이 왜 이런 망상에 사로잡혀 파멸과 죽음을 자초할까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역사란 현재의 우리 모습을 비춰 주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범죄한 인간의 실존은, 결국 사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하나님께 반역했는지 과거의 역사를 살펴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죄의 기원인 사탄이 어떤 존재인가를 유추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 되는 존재를 지칭하는 표현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2. 계명성(morning star)은 밤 동안 수평선 근처에서 밝게 빛나다가 태양이 떠오른 직후 사라지는 금성(샛별)을 말합니다. 계명성이나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상징하는 존재는 무엇일까요?(12, 15절, 참고 창 11:1~9, 눅 10:18)

 

3. 본문에서 “너”로 지칭되는 존재는 직접적으로는 바벨론 왕을 의미하지만, 본문이 묘사하는 그의 행동을 통해 볼 때 간접적으로는 사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다윗이 신약의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사야는 그의 어떤 점에 대해서 강렬하게 비난합니까?(13~14절)

 

4. 본문에서 “너”라고 지칭되는 존재가 품었던 ‘야망’과 결국 그가 맞이하게 될 ‘운명’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어 보입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의 모습이 어떤 결과를 낳습니까? 그에게 주어진 심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15, 19~20절)

 

5. 압도하는 권력을 가졌지만 야욕과 교만에 사로잡혀 인생을 망친 사람들의 예를 서로 나누어 봅시다. 때때로 자신 안에 있는 교만은 타인에 대한 잔인함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처럼 내가 교만하여 남에게 상처 준 일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6. 공동체의 건강한 유대감을 해칠 수 있는 교만의 모습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다른 사람의 교만한 모습을 지적하기 전에 우선 나의 교만으로 인해 상처 받은 지체들을 생각하며 용서와 회복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그리고 이 교만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나누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죄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 사랑을 중심으로 한 잘못된 사랑의 질서에 빠져 있는 상태를 일컫습니다. 자기 의로 가득 찬 교만한 자들은 그리스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은, 인간이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일종의 한계 의식과 깨어짐을 통해 구원자를 찾게 될 때 복음이 주는 은혜입니다. 복음의 은혜가 역사하는 곳은 인간의 자기 깨어짐이 있는 현장입니다. 교만한 인간은 사탄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의 현재 위치를 허락하신 주권자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아울러 자기 주변에 있는 동료들을 억압하는 잔인성을 표출합니다. 구원이 필요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한계 설정은 결코 어리석은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릴 줄 아는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