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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진리가 새겨진 창조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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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문을 열며
현대 사회를 똘레랑스(tolerance) 사회라고 말합니다. 관용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세계를 말합니다. 다양성이 인정되려면 다른 사람을 배제하지 않고 참아 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대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감과 실존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면들이 잘못 사용되어 진리가 상대화되면, 진리를 선포하는 행동이 독단적이고 폐쇄적인 행동으로 오인될 수도 있습니다. 분명 세상은 다양해지고 상대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현 시대에만 이런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전 선지자 이사야가 당대에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했을 때, 그 말씀은 다양한 대상과 각 경우에 따른 독특한 정황을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그분이 만드신 세계만큼이나 다양하고 변화무쌍합니다. 하나님은 진리라는 본질을 변질시키지 않으시면서도 다양한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결실을 얻기 위한 적용을 하십니다. 이사야가 비유로 전한 농부의 진리는 이 점을 잘 보여 줍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이사야가 거듭해서 유다 백성들에게 강조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23절) 선지자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은 주로 어떠했습니까?(참고 마 11:17, 눅 7:32, 겔 33:30~33)

 

2. 농사짓는 행위에 대한 동사(verb)를 본문에서 찾아 적어 봅시다.(24, 25, 27절) 농사는 1년 동안 늘 같은 일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에 따라 다른 행위를 요구한다는 사실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입니까?

 

3. 지면을 평평히 한 후에 농부는 어떤 일을 합니까?(25절) 이스라엘 땅을 경작하는 농부들은 보통 경작지에 한 작물만 심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사야는 이런 지혜의 근원을 어디에서 찾았습니까?(26절)

 

4. 23~26절이 다양한 백성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다양한 방법을 강조한다면, 27~29절의 비유는 어떤 진리를 강조합니까?

 

5. 경건하고 예민한 관찰자라면 이사야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원리나 현상을 통해서 영적인 진리를 설명해 주는 그림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예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6. 농부가 농사짓는 데 다양한 방법을 쓰는 이유는 최종의 목표, 즉 먹을 수 있는 곡식을 거두기 위함입니다. 우리 삶에서 결실을 거두기 위해, 농부 되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다양한 사건을 보면서 발견할 수 있는 진리를 나누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에 관한 비유는 우리의 마음을 참 아프게 합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그 사람들을 비판해 보기도 하지만, 정작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열려야 깨달을 수 있는 진리의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느 발명가가 말했습니다. “인류 최대의 발명품은 999번의 실패를 통해 배움으로 가능했다.” 이미 창조자가 디자인해 놓으셨지만 수건이 덮여 있는 것과 같은 진리를 명확하게 알아 가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특별한 헌신이 요구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 주시면 진리와 더불어 우리 삶의 모든 정황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농부가 자신이 소유한 땅에서 농사짓는 법을 하나님께로부터 배웠다고 한다면, 왜 우리는 영적인 진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배우기를 주저하고 있을까요? 현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가능성에 민감하게 귀를 열어 놓고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