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던
그때부터(막 1:15) 예수님과 제자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을 다니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할 자들을 모으셨고, 가르치고 전파하며 치유하시는 사역들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생겼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에서 남자들의 숫자만 헤아린 것도
세상 나라에 대립하는 군대가 구성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막 6:44).
결국 제자들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막 8:27) 예수님을 그리스도(왕)로 옹립하고,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진격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달에 묵상할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하시기까지와
성문을 뚫고 들어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내용이 나옵니다.
물론 주님과 제자들의 손에 창검이 들려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미의 전쟁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예수님은 당시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던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권위와 말씀으로 쳐서 승리하십니다. 우리는 이 ‘전쟁 같지 않은 전쟁’을 통해
주님께서 어떤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원하셨는지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약자를 위한 하나님 나라의 군대(10:1~16)
예수님께서 수행하신 전쟁이 세상의 전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보니,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와 무리들은 세상 군대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독특하게 드러나는 것이 여자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전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여자와 아이들입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에서 이들은 반드시 보호하고 받들어야 할 대상입니다. 구약 시대부터 하나님께서는 과부와 고아들을 돌보는 것을 중시하셨는데, 예수님께서는 남자가 자기 아내를 마음대로 버릴 수 없음을 선포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들과 같은 자들의 것임을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는 누구인가?(10:17~52)
영적 전쟁을 치르기에 합당한 제자는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 주는 부분이 바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직전에 있었던 사건들입니다. 재물이 많았던 한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는가?”라고 질문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이야기로 끝나는 이 부분은 제자도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는 ‘마가복음의 백미’라고 할 만합니다.
부자 청년의 질문은 아직 자신이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철저히 깨닫지 못했음을 반증해 줍니다. 정말 자신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면 바디매오처럼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게 마련입니다. 사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은 돈을 구걸할 때에도 쓰는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의 제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구원받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신중히 생각하거나 앞뒤 사정을 고려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은 ‘좋은(선한) 선생님’이었지만 바디매오에게는 ‘다윗의 자손’(그리스도)이었습니다. 청년은 제대로 된 선생님에게 배우기만 하면 자기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지만, 바디매오는 자신의 무력함을 알았기에 그리스도가 필요했습니다. 율법의 기준으로 본다면 청년은 정결했고, 바디매오는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청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물을 버릴 수 없었고, 바디매오는 유일한 재산인 겉옷도 버리고 예수님께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결국 청년은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슬픈 빛을 띄며 ‘가고’, 바디매오는 “가라”라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한편 제자들의 모습은 아쉽기만 합니다. 베드로는 부자 청년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그들의 행태를 보면 ‘버린’ 것이 아니라 ‘투자’한 것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이후에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기를 원했고, 다른 제자들은 그 두 사람을 보고 화를 냈습니다. 결국 열두 제자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참 제자의 모습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이 아니라 여리고에서 구걸하던 바디매오의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바디매오는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그 믿음을 인정받은 후에는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의 모습이야말로 참 제자의 모습입니다.
예루살렘 정복(11:1~25)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고, 사람들이 “호산나”(지금 구원하소서)라고 외치며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는 모습은 왕의 압제에 반역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성문을 열고 침략군의 장군을 왕으로 인정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쫓으신 것은 침략군이 점령한 성의 신전을 훼파하는 것과도 같은 의미로 여겨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상징하는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통해 비록 돌로 만들어진 성전은 그대로 서 있지만 실상은 파괴된 것이며, 새로운 성전인 교회가 세워졌음을 선언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예루살렘은 전쟁 자체를 치르지 않았고, 성전은 여전히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야에서 이미 예루살렘은 정복되었고, 성전은 파괴되어 그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성전이 세워져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권세를 부여받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모임, 교회입니다.
권세들과의 전투(11:27~12:34)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기존에 그 성을 다스리고 있던 권세자들과 전투를 벌이시는데, 창검에 의한 전투가 아니라 진리와 비진리의 전투였습니다. 주님은 먼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 즉 전통적 권위의 대표자들의 위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28절)라는 질문으로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어떠한 역사적, 전통적 권위체계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함을 주장하며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공격에 대해서 “세례 요한의 권세는 어디로부터 왔느냐?”라는 질문으로 대응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권세는 역사나 전통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짐을 분명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적으로 대제사장과 서기관, 장로들에게 이스라엘을 맡기셨으나 그들이 순종하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의 아들을 죽임으로써 영원한 심판을 당하리라는 예언까지 아울러 주십니다(12:1~12).
전통적 권위자들을 물리치신 이후에는 바리새인과 헤롯당, 즉 로마와 정치적 이해관계에 있는 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가이사에게 세를 바쳐야 하느냐의 문제를 제시합니다. 예수님을 세속 정치의 힘으로 옭아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에 대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대답하십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님을 잘 보여 줍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속 정치의 방식으로 싸우지 않으며, 또 세속 정치에 편승하지도 않습니다(12:13~17).
정치적으로는 바리새인과 반대편에 있던 사두개인들의 부활 논쟁에서도 예수님은 그들의 논의에 편승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기에 지극히 현세적이고 현세의 상황에 집중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이 없다는 그들의 생각을 깨뜨리심으로써 현세에만 집중하고 현실적인 유익만 추구하려는 태도를 무너뜨리십니다(12:18~27).
예수님과 서기관의 대화에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새롭게 세워질 법도가 무엇인지 드러납니다. 하나님 나라는 복잡한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장 핵심적인 계명이 기반이 되는 나라입니다. 이 대화 후에 감히 예수님께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12:34). 예루살렘의 권세자들과 예수님의 논쟁은 예수님의 승리로 확정됐습니다.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다(12:35~13:37)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모습을 통해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영적으로 점령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12:35).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아들이 통치하는, 하나님의 직접 통치가 이뤄지는 나라입니다. 권세 잡은 자, 부유한 자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인 두 렙돈을 드리는 과부가 인정받는 나라입니다.
또한 이 나라는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온 세상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상징이었던 금과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지은 성전은 곧 파괴될 것입니다(13:2). 천국 복음은 만국에 전파될 것이며(13:10), 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전 파괴를 예언하심과 동시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있을 일까지 함께 말씀해 주셨습니다.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마지막 때를 알리는 큰 싸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언제 주님께서 다시 오실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깨어 준비하는 자가 돼야 합니다(13:33).
이렇게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전쟁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영적 전투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매일의 전쟁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지만, 마지막 승리는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내게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날마다 말씀으로 지혜와 능력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