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11년 02월

성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본체

과월호 보기 김철우 목사

요한복음 1~6장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서술한 것이 아니라, 7개의 표적을 중심으로 “나는…이다(I am)”라는 예수님의 자기 선포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사도 요한으로 보는데, 본서에는 단 한 번도 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지만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21:20)를 저자라고 밝히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기록 시기는 공관복음이 모두 완성된 이후부터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기 전인 AD 70~95년경으로 봅니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성경 전체의 주제인 3장 16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를 믿어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앞으로 몇 개월 동안 본서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본체이시면서 우리와 꼭 같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우리를 체휼하시는 대제사장 예수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장 요한은 예수님을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로고스, 즉 말씀이라고 소개함으로 복음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놀라운 예수님을 백성들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향해 누구냐고, 혹시 메시야가 아니냐고 묻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자라고 고백합니다. 세례를 받고자 요한에게로 나오시는 예수님 위에 하늘로부터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에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예수님을 소개하고, 자신의 두 제자에게도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들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도록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첫걸음은 세례 요한의 도움으로 순적하게 시작됩니다. 베드로, 안드레, 빌립, 나다나엘 등을 제자로 부르신 후에 본격적인 메시야 사역을 펼쳐 갑니다.

2장 요한복음에 기록된 첫 번째 이적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셨던 수많은 이적과 기사들 가운데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서 행하신 표적을 제일 먼저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포도주가 떨어져 버린 것과도 같은 암담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과 기쁨이 회복될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지만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순종으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영광스런 표적을 경험한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됩니다. 유월절을 맞아 돌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참 성전 예수님’은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면서 이 성전을 헐면 사흘 만에 다시 지으리라고 선포하십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그분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영적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3장 니고데모라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유대인들의 종교지도자였던 그는 어두움을 틈타 한밤중에 찾아와서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생 정도로 생각했던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모든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주이십니다. 이 놀라운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았다면 우리 모두는 세례 요한처럼 살아야 합니다. 평생토록 그를 증거하면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4장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점점 많아지자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시기로 작정하고, 사마리아를 거쳐 갈릴리로 가십니다. 보통의 유대인들이라면 피해 가는 길을 택하신 이유는 그곳에 꼭 만나셔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한낮에 우물을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자였습니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개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날마다 마셔도 목마른, 세상이 주는 물로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배에서 솟아나 영원토록 목마르지 않는 ‘날마다 솟는 샘물’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이 샘물의 은혜를 누리시는지요?

5~6장 다시 예루살렘으로 오신 예수님은 양문 곁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그러나 그날이 안식일이었기에 이로 인한 비본질적인 논쟁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친 이유는 “내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이제까지 일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더욱 흥분하여 잡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에게 예수님의 교훈이 이어집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영원한 생명과 심판의 주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 예수님은 자비의 집이라고 일컫는 베데스다에서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해 오랜 세월 잊혀진 38년 된 병자를 기억하시고 찾아가 고쳐 주십니다. 또 지나간 남편이 다섯이요 지금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닌, 수치로 가득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 무더운 대낮에 수가성 우물가로 찾아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을 읽으며 예수님이 우리 가까이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고 광명한 새날을 열어 주심을 볼 수 있습니다. 어두운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의 심정으로 요한의 복음서를 묵상합시다. 세상이 결코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영생의 참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