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
사무엘상 17~23장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을
평가하거나 선택하거나 지위를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이것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일반 사회에서건
교회 안에서건 다 적용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일은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교회 내에서도
사람은 쉽게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말로는 하나님과 교회의 영광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을 시험에 빠뜨리는 사람도 있고, 전혀 눈에 띄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지 않아도 참으로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보다 먼저 내가
참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요? 바로 이번 달에 우리가 함께 묵상할 본문, 사울과
다윗과 요나단의 이야기가 참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길과 참 하나님의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을 잘 보여 줍니다.
무엇을 의지하는가?(17장)
하나님의 사람을 구별하는 첫 번째 기준은 바로 ‘그가 무엇을 의지하는가?’입니다. 사무엘서는 사울과 다윗이 골리앗이라는 강력한 위협 앞에서 무엇을 의지하는지 비교해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지금까지 많은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승리를 가져다 준 용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다윗은 전사가 아니라,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기 위해 전쟁터까지 온 비교적 어린 목동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 앞에 골리앗이라는 위협적인 요소가 등장한 것입니다.
여기서 사울과 다윗은 현저한 차이점을 보입니다. 사울은 골리앗과의 싸움에 나서는 다윗에게 자기의 갑옷과 무기를 제공하려 합니다. 사울은 싸움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갑옷과 무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해 오직 물매와 돌을 가지고 싸움에 나섰습니다. 결국 골리앗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 다윗 앞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갑옷과 무기로 상징되는 자신의 힘, 재력, 지식, 지위를 의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이 하나님을 모독할 때 의분을 느끼고 담대히 싸움에 나서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18~20장)
하나님의 사람을 구별하는 두 번째 기준은 ‘그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울은 다윗을 사위로 삼는다는 구실을 내세우면서까지 다윗을 전쟁터로 내몰아 죽이려 했고, 이후에는 아예 직접 다윗을 향해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하는 등 다윗에 대한 적개심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이에 비해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며 이후에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그는 우선 사울과 다윗을 화해시키려 노력하고, 사울이 강경하게 다윗을 적대시함을 확인하자 다윗을 숨겨 도망할 수 있도록 돕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요나단이야말로 다윗을 정적으로 생각하고 질투심을 느껴야 할 사람이었지만, 그는 다윗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에 순종했습니다.
다윗 역시 자신이 이미 사무엘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 하기 때문에 이에 맞서 싸운다는 명분도 충분히 갖고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가?(21~23장)
하나님의 사람을 구별하는 세 번째 기준은 바로 ‘그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가?’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도망하는데, 외면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의 왕은 여전히 사울이었고, 다윗은 몰락한 도망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수호자로서 사울이 아닌 다윗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아둘람 굴까지 몰아가셨습니다. 왕의 사위였던 다윗으로서는 그야말로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다윗에게로 모여 이스라엘을 수호하는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사울은 왕궁에 살고 있었으나 더 이상 왕으로서 지킬 것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신하들을 믿지 않았고, 자기 아들 요나단조차 다윗을 숨기며 자기를 대적하고 있다는 비방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에돔 사람 도엑 같은 악한 자의 말을 듣고, 놉에 있던 성소의 제사장들을 모두 참살한 것은 그가 더 이상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폭력집단의 수괴에 불과하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사울이 이처럼 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악행을 거듭하는 동안, 다윗은 블레셋과 전투를 벌여 그일라 지역의 사람들을 블레셋의 공격으로부터 구했습니다. 다윗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외적으로부터 자기 백성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수호자로서 일하는 동안 자기 유익을 추구하거나 권력을 구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블레셋으로부터 구해 준 그일라 사람들이 자신을 배반하려 한 것이나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의 거처를 밀고한 사실에 대해 어떠한 보복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을 이해하고 철저히 저들을 보호하는 자의 자리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 즉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가끔은 그런 노력이 인정받지 못해 낙심하게 되는 일도 있고,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상황을 겪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람은 형제들을 원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늘 교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거짓된 이미지와 정보, 소문들이 빛의 속도로 퍼져 나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세상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이 누구인지 바르게 분별되고 세워져야 합니다.
이번 달에도 <날마다 솟는 샘물>과 함께 매일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내가 먼저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로 세워질 수 있도록 훈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누가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인지 파악하고 분별하는 안목을 기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사는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뤄져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