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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하나님이 세우시는 권위자

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

인류 역사 가운데 리더십의 문제는 항상 있었습니다. 누가 지도자가 되고 누가 그 뒤를 따를 것인가, 어떤 사람을 따르는 것이 옳은가의 문제는 사람이 사회를 형성하여 살아가는 한 끊임없이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이 달에 우리가 묵상할 사무엘상의 마지막 부분은 이스라엘의 왕이 사울에서 다윗으로 교체되는 상황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권위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온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은 과연 어떤 사람에게 향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나는 그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순종해야 할까요?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삼상 24장)
다윗은 사울을 피해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엔게디 광야에서 어려운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거기까지 쫓아와 수색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사울을 위험에 빠뜨립니다. 사울이 수색 중에 용변을 보려고 한 굴에 들어갔는데 마침 그 굴은 다윗과 일행들이 숨어있던 곳이었습니다. 사울은 어두운 굴 안을 볼 수 없었지만 다윗과 일행은 사울을 볼 수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서 기자는 여기서 사울이 용변을 보려고 그 굴에 들어갔음을 밝혀 그를 희화화함으로써 사울이 왕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을 만한 자가 아님을 암시해 줍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임을 인정했기에 그를 죽이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저 하나님께서 둘 사이에서 누가 옳은지 심판해 주시리라는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권위자는 먼저 다른 사람의 권위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삼상 25장)
사무엘서 기자는 다윗이 큰 실수를 범할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도 ‘미련하다’는 뜻의 나발이라는 자가 다윗의 도움 요청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다윗이 사울로부터 쫓기고 있는 상황을 비웃기까지(25:10) 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나발의 무례한 태도에 분노해 그를 죽이고 그 집을 몰살하려고 부하들을 이끌고 나발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나발의 지혜로운 아내 아비가일은 즉시 다윗 앞에 가서 사죄하며, 이 일로 다윗이 나발을 죽이면 다윗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에 나발을 죽인 일이 무죄한 피를 흘린 것으로 여겨질 것임을 지적합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발길을 돌립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이 아니었다면 자신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다스려야 할 사람을 죽인 자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나발에게 잘못이 있기는 했지만, 그 이유로 다윗이 나발을 죽였다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합당하다고 여겨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자기 권세를 주장하지 않는 사람(삼상 26장)
다윗에게 다시 한 번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이는 24장과 거의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메시지는 조금 다릅니다. 24장에서는 다윗이 사울의 권위를 인정하지만, 26장에서는 다윗이 사울이 악한 자임을 알면서도 그 심판의 권세가 자기에게 있다고 자인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비새는 사울과 그 부하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울을 다윗의 손에 붙이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아비새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비록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자격을 잃은 것이 분명하더라도 다윗은 자기가 사울을 처단할 심판자로 세움을 입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철저하게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시지 않은 권세는 남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사명을 잊지 않는 사람(삼상 27~28장)
다윗은 더 이상 사울의 추격을 피하기 어려워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의탁합니다.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죽이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늘 승전보를 이어왔던 다윗입니다. 그런 그가 블레셋에 투항했다는 것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최악의 상황까지 몰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외형상으로는 블레셋의 신하라는 굴욕적인 상황까지 내려갔지만 거기서도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에 비해서 사울은 블레셋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며, 자신의 사명을 송두리째 부정해 버립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신접한 자들과 박수들을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신접한 자를 찾는 한심한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음을 확인받는 것 외에는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해서 자기 사명을 잊거나 부정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권위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사람(삼상 29장)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것보다 더 큰 위험에 처합니다. 바로 블레셋 군대의 일원으로 이스라엘과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블레셋 편에서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와 싸운다면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받기는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 다윗 자신이 그런 싸움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아기스 앞에서 자기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앞장설 것처럼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다윗을 구원하셨습니다. 다른 블레셋 사람들의 반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과의 전투에 나서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을 의뢰했던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지키심이 그에게 작용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면 다윗처럼 그 상황을 피해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삼상 30장)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전할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또 다른 위기에 빠집니다. 다윗과 군사들이 시글락을 비운 사이 아말렉이 시글락을 침략해서 모든 재산을 노략하고 가족들을 끌고 간 것입니다. 자녀들을 잃은 슬픔 때문에 백성이 이성을 잃고 심지어 다윗을 돌로 치려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다윗에게 매우 급박한 상황이었고, 지금까지 함께한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느낄 수 있을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흔들리거나 분노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하나님만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다윗에게 아말렉을 쫓아가서 싸워 이길 수 있게 하셨고, 이 일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게 하셨습니다.

거짓 권위자의 최후(삼상 31장)
사무엘상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참된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던 사울이 그 아들들과 함께 비참하게 죽어간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제대로 된 공을 세웠던 것은 오직 통치 초기에 길르앗을 침공한 암몬을 막은 것(삼상 11장)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전쟁에서 죽었다는 소식에 길르앗 사람들만이 사울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의 시신을 수습해서 장사지내 주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서 참된 권위자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였기에 이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해가 바뀔 때가 되면 여러 모임과 공동체의 지도자가 교체됩니다. 또 올해는 국가적으로도 리더십의 교체가 있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사람이 참된 권위자로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며, 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2012년의 마지막 달, <날마다 솟는 샘물>과 함께 이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누구를 세우셔서 그분의 통치권을 실현해 가시는가, 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가를 살피고 그분의 뜻을 찾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