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08년 07월

암흑을 가르는 소망의 빛

과월호 보기 김철우 목사

하박국·스바냐·학개·말라기

 

지루한 장마도, 푹푹 찌는 폭염도 견딜 만합니다. 그러나 의인이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하고, 악한 자들이 득세하는 것은 정말 참기 힘듭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이런 혼돈이 계속되는가?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던 선지자들에게도 동일한 질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왜? 왜? 왜…?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에 하나님이 이루실 놀라운 일들을 소망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고백하며 ‘여호와의 전’인 우리 자신을 중수하는 매일 아침이 되면 좋겠습니다.

 

  하박국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저작 연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 편이나 바벨론이 강대국으로 급부상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바벨론의 유수를 눈앞에 둔 여호야김의 암울한 치세에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소망을 전합니다. 백성들의 패역과 겁탈과 강포가 눈앞에 있고, 표범 같은 갈대아 사람들이 독수리처럼 날아오는 위급한 상황들이 펼쳐집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어찌하여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오늘날 우리도 살아가면서 동일한 질문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성루에 서서 대답을 기다리는 하박국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2:3). 그러므로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온 세상에 가득함을 볼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 아멘! 우리 모두가 이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바냐    여호와의 날에 남은 자들
스바냐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숨으신다”입니다. 요시야 왕 초기에 활동했던 스바냐는 므낫세와 아몬 시대에 극심해진 우상 숭배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전합니다. 그날이 곧 “여호와의 날”입니다. 하나님은 요시야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바알과 우상 숭배자들을 멸하실 것입니다(1:4). 여호와를 찾지도 구하지도 않는 자들에게 여호와의 큰 날은 가깝고 빠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웃 나라들을 심판하십니다. 경고의 표시입니다. 강 건너 불구경만 하는 유다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심판의 날에도 거룩한 그루터기 같은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받는 자들입니다(3:12). 그들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3:17). 여호와 하나님께 숨는 자들이 그날에 부를 노래입니다. 암울한 날에도 주님을 노래하는 백성들이 됩시다.

 

  학  개    화려한 집에 거하는 황폐한 영혼들
선지자 학개는 포로시대 후기의 남 유다에 하나님 말씀을 전한 최초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선지자 스가랴와 함께 백성들을 격려하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여호와의 성전은 무너진 채로 황폐했는데,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자기 집 짓기에 급급했습니다. 하나님이 최우선이 아니라 뒷전으로 밀려난 것입니다. 백성들은 선지자 학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돌이켜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곧 실망하고 맙니다. 솔로몬이 건축한 이전 성전에 비하면 지금 성전이 너무나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입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2:9). 더 큰 영광을 바라보며 지금 내가 중수해야 할 성전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말라기   마지막 선지자의 언약 갱신
말라기는 포로시대 후기를 살던 백성들이 노골적인 불순종, 편의주의, 종교적 거짓 등의 문제를 다시 한 번 모세의 율법으로 갱신하려는 메시지입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한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언급한 후,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죄악을 열거합니다. 그들의 종교적 행위는 잘 포장되어 그럴듯해 보이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1:10). 형식적인 제물에 상심한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선지자는 온전한 십일조를 예로 들며 진정한 마음으로 그분을 경외하라고 촉구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대하십니다.


말라기를 마지막으로 구약이 끝나고, 신약이 시작되기 전까지 약 400년이란 공백기가 있었습니다. 이 기간을 침묵시대 또는 암흑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암울한 시대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졌다는 것입니다.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말씀의 홍수시대를 살아가지만 중심에서 우러나온 순종이 없기에 영혼의 갈급함이 극에 달했습니다. 암울한 시대를 관통하는 한 줄기 빛 같은 생명의 말씀이 무더위에 지친 우리의 영혼까지 소생시켜 주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