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
어느새 2013년의 마지막 달을 맞았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이 되면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이번 한 해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보냈는가?’라는 점검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올해도 후회로 마감한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고, 또 어떤 이는 이번 한 해는 정말 보람 있게 보냈다고 뿌듯해 하기도 할 것입니다.
<날마다 솟는 샘물>에서는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기준으로 평가해 보고, 새롭게 다가올 한 해를 하나님의 지혜로 계획하기 위해 지혜서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잠언을 펼쳤습니다.
잠언의 메시지는 ‘지혜’라는 단어 하나에 집중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달에 다룰 잠언 1~9장은 잠언 전체의 서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누가 이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지혜를 얻은 자와 얻지 못한 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 지혜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1:1~9)
지혜자(솔로몬)는 세상 사람들을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그리고 미련한 자입니다. 지혜자가 잠언을 기록한 목적은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하고(1:2~4), 이미 지혜로운 사람은 그 지혜와 명철을 더욱 깊게 하는 것입니다(1:5~6). 반면, 미련한 자들을 가르치거나 도울 의도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1:7). 다만 미련한 자들을 경계하고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칠 뿐입니다.
잠언에서 ‘어리석음’과 ‘미련함’은 비슷한 면도 있지만 다릅니다. ‘어리석음’은 ‘젊음, 미숙함, 단순함’ 등과 비슷한 말로 비록 지혜롭지는 않지만 가르침을 듣고 성숙할 가능성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미련한’은 ‘거만한, 악한’과 비슷한 말로서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기에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상태입니다.
어리석은(미숙한) 자들에게는 말씀을 듣고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소망이 있지만, 어리석은 자들이 말씀을 듣고 모두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결국 미련한(거만한) 자의 길에 들어선 셈이며, 미련한 자들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결국 지혜롭게 될 소망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에 있을 뿐입니다(1:7).
악인의 길로 가지 말라(1:10~2:22)
잠언에서는 ‘길’이라는 은유가 상당히 자주 나타납니다. 젊은(어리석은) 자들 앞에는 악의 유혹(1:10~19)과 지혜의 부름(1:20~33)이 공존하며, 어느 쪽의 말에 귀를 기울이냐에 따라서 악인의 길(1:15, 19, 2:15)을 걷게 되기도 하고 지혜의 길(2:8~9)을 걷게 되기도 합니다.
지혜자는 먼저 악의 길에 대해 경고하며, 그 길로 들어서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악한 자들의 관심은 다른 이들을 해하고 빼앗아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필경 패망의 길이며,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해하는 결과에 처합니다.
악의 길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혜는 결코 어딘가 숨어 있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나 쉽게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1:20~21). 어리석은 자, 거만한 자가 지혜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지혜의 가르침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1:24). 중요한 사실은 지혜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악의 길로 행하다가 일단 해를 당한 이후에는 더 이상 지혜를 찾기가 힘들어진다는 점입니다(1:27~28). 너무 멀리 갔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악인의 길을 걷기를 기뻐하는 자들이 많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은 사망입니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에 머물 수 있지만, 악인은 땅에서 끊어집니다(2:21~22).
지혜를 얻고, 지혜를 지키라(3~4장)
지혜자는 자신의 가르침을 듣고 있는 ‘아들’에게 지혜의 길에서 떠나지 말라고 반복해서 당부합니다. 지혜의 길에서 떠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지혜를 얻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않는 데 있습니다(3:5~7). 지혜는 여호와 하나님께 있으므로 말씀의 징계나 훈계를 싫어해서는 안 됩니다(3:11~12, 4:1).
비록 징계나 훈계를 받는 것이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지혜는 진주, 은, 금, 장수, 부귀의 근원이 될 뿐 아니라 생명나무에 비유할 수 있기에(3:14~18) 징계와 꾸지람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얻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잠언 기자는 처음에 했던 악인의 길과 지혜의 길에 대한 설명을 반복하면서 지혜의 길을 대대로 계승해 걷고(4:1~9), 악인의 길을 따르지 말라고 강조합니다(4:10~19). 그리고 지혜의 길에 한번 들어섰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그 길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합니다. 사람이 관심을 갖고 지켜야 할 것이 재물이나 건강이 아니라 마음의 지혜이며, 그 지혜가 생명이 되고 건강이 되고 인생의 평탄함이 됩니다(4:20~27).
음녀를 피하라(5~7장)
지혜자는 또 지혜를 지키라고 가르친 후에 음녀를 피하고 간음죄를 짓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음녀(5:3, 7:8)는 실제로 음탕한 여인을 가리키는 것이면서도 또한 우상숭배를 포함한 모든 죄악을 가리키는 은유이기도 합니다. 어리석음이나 죄악은 음녀와 같이 유혹하는 속성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 유혹에 빠지면 결국 명예, 재물, 건강을 모두 빼앗기게 됩니다(5:9~11).
그래서 지혜자는 아내를 더욱 사랑하고 가정에 충실할 것을 가르치고, 음녀를 따르지 말라(5:15~23)고 경계할 뿐 아니라 담보나 보증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하고(6:1~5), 매일의 생활에서 부지런하며(6:6~11), 거짓과 다툼을 피하라고 가르칩니다. 이웃과의 돈 관계나 게으름, 거짓말 등은 모두 음녀와 같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을 갖고 있기에 명령과 법, 훈계와 책망을 새겨듣고 그것을 멀리해야 합니다(6:23~24).
지혜자는 한 젊은이의 모습을 매우 실제적으로 표현해 어리석은 이가 음녀(죄)의 유혹에 빠지면 어떻게 파멸하게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7:7~23). 간음을 포함한 모든 죄악이 이처럼 ‘여러 가지 고운 말’(7:21)로 유혹하는데, 그 유혹을 따르게 되면 ‘화살이 그 간을 뚫는’(7:23) 것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마련입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지혜(8장)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결국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임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지혜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앞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반복해서 당부합니다. 우선 지혜를 얻기 위해서 아무도 가지 못한 곳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강조합니다(8:2~4, 1:20~21). 그리고 세상에서 다른 어떤 것을 얻으려 하기보다 ‘지혜를 얻으려고 노력하라’는 가르침 역시 반복합니다. 또 은이나 정금과 같은 재물보다 나은 것이 지혜라는 사실도 반복합니다(8:10, 3:14). 재물을 구할 것이 아니라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재물도 함께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 역시 반복하고 있습니다(8:21, 3:9~10).
이렇게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들을 반복해서 강조한 후에, 지혜자는 지혜가 절대적인 가치를 갖고 있음을 주장합니다. 지혜를 의인화해 지혜가 창세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돼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이 세상을 창조하는 작업을 함께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을 만드실 때 그분의 지혜를 가지고 만드셨기에 세상 만물에 지혜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지혜가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8:22~31).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의 절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가르침이 되기도 합니다.
지혜의 여인, 미련한 여인(9장)
마지막으로 잠언은 지혜와 미련함을 여성으로 의인화해 어느 여인을 따라 갈 것이냐는 질문으로 그 서론을 마치고 있습니다. 지혜의 여인은 어리석은 자, 지혜 없는 자를 불러 자기 집으로 들어와 식물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생명을 얻고 명철의 길을 행하라고 말합니다(9:4~6). 그러나 거만한 자나 악인을 징계하거나 책망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고 교훈을 줘야지, 거만한(미련한) 자에게는 교훈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말을 반복합니다(9:10, 1:7).
마치 지혜가 어리석은 자를 부르듯이, 미련(우매)함 역시 어리석고 지혜 없는 자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의 가르침과는 좀 다릅니다. 미련함은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은 떡이 맛이 있다”라는 가르침을 어리석은 자에게 주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미련함의 소리를 듣고 그대로 행하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9:17~18). 결국 어리석은 자가 지혜의 부름에 응답할 것이냐, 미련함의 부름에 응답할 것이냐에 따라 그 운명이 좌우됩니다.
2013년의 마지막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가르침을 듣고 어떤 길로 행했는지를 돌이켜 봅니다. 어떻게 보면 정답은 아주 쉽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교훈을 즐거이 듣고, 징계나 책망을 받더라도 그것을 오히려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 돼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쉬운 답을 따르지 않고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다면 결국 미련한 자의 길에 접어들게 돼 파멸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이제 어느 길로 걸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12월, <날마다 솟는 샘물>과 함께 지혜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는 묵상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