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김철우 목사
야고보서·요한1서
야고보서 - 행함, 믿음의 또 다른 면
야고보서와 요한일서를 함께 묵상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요, 예수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입니다. 그는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모였던 예루살렘 회의에서 율법과 믿음의 관계를 정리했던 장본인입니다. 탁월한 신앙의 균형감각을 지녔던 야고보는 자칫 믿음으로 치우칠 수 있었던 이신득의(以信得義)의 교리에 행함을 더함으로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1장 본서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 즉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일차적인 독자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인해 생겨난 다양한 시험과 시련을 겪고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이들에게 기도로 지혜를 구할 것을 권면합니다. 특히 받은 말씀을 행함으로 이어가는 것이 참된 경건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2장 행함의 첫 번째 대상은 다른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를 차별하지 않는 것이 말씀을 행하는 자들의 태도입니다. 만약 믿음이 있노라 하는 사람이 말로만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3장 행함의 또 다른 대상은 내 입술입니다. 말로써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진실된 믿음은 입술에 파수꾼을 세웁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속에 있는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입으로 나옴을 알기에, 화평을 심으려 합니다.
4장 세상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행함의 원리는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세상과 벗하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형제를 비방하고, 헛된 생각을 품고 삽니다.
5장 부한 자들에 대한 경고 이후 인내에 대해 말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살면서 재물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너무나 힘든 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특히 육신이 병들면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요한1서 - 사랑, 믿음의 확실한 증거
사도 요한은 보아너게(우뢰의 아들)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과격한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 변화된 이후,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가 전하는 요한일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 줍니다.
1장 태초부터 계신 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고 듣고 배운 바에 의하면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따라서 그와 사귐이 있다 하면서 동시에 어둠에 거할 수는 없습니다. 혹시 죄를 범했으면 빛이신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깨끗하게 하심을 입어야 합니다.
2장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는 새 계명을 지킵니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지 않고, 참된 것을 사랑합니다.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속고 속이는 시대에 주안에 거하면서 새 계명을 지키고, 의를 행하는 자에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3장 미혹하는 자들과 악한 자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의를 행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자는 죄를 짓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닌 적극적인 자세로 형제 사랑하기를 선택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자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나에겐 진실한 사랑이 있습니까?
4장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비결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물리치고, 최후 승리를 얻게 합니다. 믿음은 사랑이라는 구체적인 행위로 드러나야 합니다. 내가 사랑해야 할 형제는 누구입니까?
5장 요한일서의 기록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이야말로, 죄와 악이 관영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줄 것입니다.
야고보서와 요한일서를 연이어 묵상하면서 경험하게 될 은혜는 믿음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행함과 형제 사랑이라는 구체적인 삶으로 증명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듯이, 구체적인 형제 사랑이 앞서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무의미한 것입니다. 지루한 여름의 끝자락에 서서 맞은 9월의 상큼함처럼, 우리 신앙에 신선한 도전을 던지는 두 서신서를 묵상함으로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